“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에 관하여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뜨고 있다. 군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의 합성어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군중으로부터 자금을 얻는 방식을 뜻한다. 우리나라에는 2011년부터 도입돼 인기를 끌고 있다.

창작자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플랫폼에 올린 뒤 목표금액과 모금기간을 설정한다. 이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투자 형태로 자금을 제공하고, 기간 내 목표금액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성 역차별 vs 페미니즘 … 작가 동일, 흥미 유발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 확보 … 명암 엇갈리기도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후원형 ▲기부형 ▲대출형 ▲지분투자형(증권형) 네 가지 형태로 나뉜다. 국내에선 2011년 후원·기부·대출형의 크라우드 펀딩 도입을 시초로 2016년 1월 증권형도 가능해졌다.

지난 3일 일반투자자의 크라우드펀딩 투자한도를 2배로 확대한다는 취지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처럼 크라우드펀딩이 하나의 시장으로 인정받고 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관한 명암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졌어도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창작자들에게 제작 실현 가능성을 준다는 밝은 면이 있다. 반면 후원자의 경우에는 프로젝트 모금을 달성해도 작품 제작·배송 과정에서 난항을 겪어 수령이 지연되거나, 품질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환불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이와는 다른 독특한 사례가 하나 알려졌다. 바로 개인이 ‘혐오 장사’라는 타이틀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전혀 상반되는 성질의 작품을 크라우드펀딩에 올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90년생 김지훈’
‘1990년 백말띠의 해’
 

○○년생 신드롬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시초는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코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여권신장운동을 뜻하는 단어로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음을 밝혀내는 여러 사회·정치적 운동과 이론을 아우르는 용어를 일컫는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책에 담긴 내용에 공감을 표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베스트셀러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이에 질세라 ○○년생 시리즈가 나왔다.

지난달 21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82년생 김지영 씨의 남편이라 주장하는 ‘79년생 정대현’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게시자는 글의 서두에 “82년생 김지영처럼 한국에서 남자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과 피해를 79년생 정대현이란 사람의 인생에 모두 넣는다”고 적으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피해를 받고 있음을 주장했다.

뒤를 이어 김수상(가명)이 쓴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소설까지 등장했다. 앞선 79년생 정대현이 익명으로 SNS에 글을 게재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90년생 김지훈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크라우디’에 “남성 차별 시대 남성 인권을 위한 책, 90년대 김지훈”이라는 제목으로 모금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1000만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당초 목표였던 3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다.

최종 달성률이 346%에 달할 정도로 모금 과정은 수월했으나 창작자의 사정을 들어 해당 소설이 출판되지는 않았다. 현재 해당 프로젝트는 비공개로 처리됐다.

그러던 중 창작자에 의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모금을 진행했던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은 ‘1990년 백말띠의 해’(이하 백말띠의 해)”의 저자 ‘희옇게’ 역시 자신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90년생 김지훈’이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며 페미니즘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백말띠의 해’는 페미니즘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우리사회에서는 ‘백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백말띠의 해인 1990년은 당시 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을 기록할 정도로 사상 최고치의 성비불균형을 보였다.

이에 많은 이들이 ‘백말띠에 관한 속설 때문에 여아 낙태를 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전혀 다른 두 책을 상대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관해 창작자는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남성인권 책, 페미니즘 책 두 개의 프로젝트를 열고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동시에 펼쳐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인권 책인 ‘90년생 김지훈’을 준비할 때는 여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거절해 승인 플랫폼을 찾는 데만 14일이 걸렸고, 그 사이 출간을 제지하는 많은 협박이 있었지만 페미니즘 책인 ‘1990년 백말띠의 해’ 경우 어떠한 사상검증이나 뒷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평화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남녀 싸움은 확실히 이슈성, 수익성 좋은 콘텐츠”라고 소감을 밝혔다.

해당 사실이 밝혀지면서 ‘1990년 백말띠의 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텀블벅’ 사이트에 이의를 제기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이전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냐는 질문에 텀블벅 측은 “프로젝트가 열리기 전 ‘공개 검토’의 절차를 거친다. 펀딩 가능 여부, 수정 및 보완할 부분을 가늠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준다”고 답했다.

해당 논란에 대해서는 “일부 웹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이 두 프로젝트(‘90년생 김지훈’, ‘1990년 백말띠의 해’)의 동일 진행자이며, 창작물을 만들 의도가 없고 후원자들을 기만하려는 의도로 진행했음을 밝혀 이를 발견한 즉시 해당 진행자와 소통을 시도하고 프로젝트 중단 및 후원자 보호 절차를 진행했다. 허위 사실을 통해 후원자들에게 혼선과 불안을 안긴 점을 엄중히 보아 해당 계정을 정지했다”고 설명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나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 여성 단체 후원 등 실질적인 소비 주체가 된 2030 젊은 여성층을 향해 어떤 이들이 던진 조소다.

많은 여자들이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겪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남녀 분쟁이라는 요소가 수익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아이템을 ‘왜’ 구입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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