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경영일선에~. 불법 비자금 조성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은근슬쩍 경영에 복귀해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부분의 경영인들은 불법 사실이 드러나 검찰조사를 받거나 경영과 관련해 파문이 일 경우 경영에서 떠나는 게 상례였다. 혹 회사에 부담을 주거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다. 그런데 임창욱 명예회장은 그룹이 별 일 없을 때는 나몰라라하고 회사를 떠났다가 문제가 터진 뒤에 경영에 다시 복귀했다. 그것도 ‘경영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임창욱 회장은 지난 1987년 미원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통신, 건설, 호텔업 등 미원그룹을 재계순위 20위권에 드는 대재벌로 키웠다. 하지만 그의 경영경력은 10년만에 중단됐다. 1997년 IMF가 닥치면서 사업다각화가 미원의 발목을 잡았다. ‘미원’이란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강해 조미료 및 식품사업 외에 호텔이나 건설, 통신 등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던 것이다. 결국 임창욱 회장은 그룹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미원을 동생인 임성욱 회장이 이끌어오던 세원그룹에 흡수합병시킨 후 소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는, 그룹명도 대상그룹으로 바꾼 뒤 회장직을 사퇴했다. 당시 재계에는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그를 가리켜 ‘재계 최연소 명예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8년만에 친정 체제로

재미있는 것은 그가 그룹을 떠난 뒤에도 재계에서는 그가 오너십마저 버렸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 임 회장 일가와 관련해 무슨 사건이 터질라치면 그룹에서는 “임 회장은 회사를 떠난 분”이라며 마치 그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최근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자금 사건만 해도 그렇다. 문제가 터지자 그룹측에서는 “오래전 기업에 몸담고 있을 때 있었던 사건이라 우리와는 관련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비자금 사건이 계속 문제가 되자 비공식적으로는 회사 고위경영인들조차 “삼성과 사돈기업이니 회사야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겠느냐”며 다리 하나는 걸쳐두었다.그런 임 회장은 비자금 사건이 표면화되고 검찰수사가 다시 시작되자 8년만에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한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대상홀딩스가 지난 1일 임창욱 회장을 대표로 지명하면서 8년 만에 경영일선에 컴백한 것. 대상그룹은 이에 대해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의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더욱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회사대표는 임창욱 명예회장이 맡겠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복수 대표이사인 전문경영인에 의해 행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임창욱 회장이 그룹 경영에 실질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검찰조사를 받아 수감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임창욱 회장은 지난 1997년 대상그룹의 방학동 조미료 공장터를 아파트로 재개발하면서 ‘삼지산업’이라는 위장계열사를 동원, 217억원의 비자금을 마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 건으로 지난해 인천지검의 수사를 받았지만, 당시 사돈관계에 있는 홍석조 검사장의 취임시기와 발맞춰 수사가 중단된 적도 있어 여러 가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따라서 임창욱 회장이 경영일선에 제대로 복귀하는 데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임창욱 회장의 활동반경을 옥죄는 올가미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구속으로 인해 그룹이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경영 전면에 나서 건재함을 알리고, 직접 회사경영을 단도리하겠다는 의미”로 보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뒷맛이 남는 건 사실이다.

소액주주들 집단소송 제기

그가 복귀의사를 표명하자마자 이번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물고늘어질 태세다. 참여연대는 지난 8월 초 임 회장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 따르면 발행 주식 총수의 0.02%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 3인의 위임을 받아 부당내부거래와 219억원 자금횡령 혐의로 임 회장을 고소했다. 소송 제기에 앞서 참여연대는 상법 규정에 따라 지난 7월 1일 대상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에게 소제기를 청구했다. 하지만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은 대상측을 상대로 당분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회신을 보내왔으며, 대상의 주식 6%(255만5,770주)를 보유한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소송 참여를 거부한 상태. 다만 국민연금만이 검찰의 재조사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본 후 회사측이 손실회복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소송 참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주주권 행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현재 검찰의 수사결과 밝혀진 횡령금액이 약 219억원이지만, 실제 대상이 입은 손실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횡령과 관련된 임무해태 행위가 추가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을 감안해 향후 청구금액을 확정할 것이며, 일단 일부 청구로서 100억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안팎곱사등이 신세가 된 임창욱 회장과 대상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재계의 또다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현재 대상그룹은 지주회사격인 대상홀딩스를 비롯 (주)대상, 대상사료, 대상식품, 대상농장, 대상정보기술 등 총 8개 계열사가 있다.


# ‘형’은 나왔는데 ‘동생’은 숨었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경영복귀와 맞물려 그의 동생인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주목된다. 한 때 형의 소유였던 미원(대상의 옛 이름)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경영권을 가졌던 임성욱 회장은 올 들어 그룹 계열사 중 상장사였던 세원화성을 지난 2월 상장폐지시킨데 이어, 이달에는 보유 중이던 세원이엔티 지분 전량을 바이오업체인 셀론텍에 팔아넘겼다. 이에 따라 임성욱 회장의 보유주식 중 상장사의 주식은 없는 상태다. 지난 93년 미원통상 전무이사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임성욱 회장은 미원그룹이 97년 대상으로 이름을 바꾼 뒤 그룹 부회장으로 일하다 지난 2000년 세원중공업(세원이엔티), 세원화성, 쇼핑몰 메사 등을 거느린 세원그룹으로 분가했다. 임성욱 회장의 은둔경영에 대해서는 재계관계자들의 여러 분석이 뒤따른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2개 상장사와 5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그룹 회장으로 일하다가 겪었을 어려움으로 인해 재계에 염증을 느낀 것 아니냐는 추측에서부터, 지난 2월 상장폐지된 세원화성의 적대적 M&A 해결과정에서 상장사 경영에 대한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둥,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재계 곳곳에 퍼지고 있다. 실제 임성욱 명예회장은 남대문의 쇼핑몰 메사의 개장 초기 매출부진에 시달리며, 경영진을 5차례나 교체하기도 했다. 또한 그룹 내 5개 계열사는 현재 합병과 회사 매각으로 2개로 줄어든 상태다. 무엇보다도 재계관계자들은 임창욱 회장과 임성욱 회장의 8년만에 뒤바뀐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8년 전 미원을 흡수합병하며 미원그룹을 지켜냈던 임성욱 회장이 이제는 상장사 지분을 모두 처분한 채 은둔하고 있어서다. 그의 은둔을 둘러싼 쑥덕거림이 시간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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