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계의 '넘사벽'인 셜록 홈즈와 조수 왓슨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미스 마플, 갈릴레오 교수, 셜록 홈즈. 희대의 탐정들을 한 자리에 초대한 곳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다. 2016년 7월에 문을 연 추리소설 전문서점 미스테리 유니온이다.
 
미스테리 유니온을 방문하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첫째, 가게 이름이 의외로 직설적이라는 것. 어떠한 ‘트릭’도 없이 ‘미스테리’라는 단어를 통해 바로 추리소설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가게의 분위기다. 2호선 이대역을 빠져나와 쭉 가다 골목길 사이사이로 진입하면 이 곳을 찾을 수 있다. 기자는 서점의 이미지를 가는 동안 그려봤다. 블랙의 모노톤, 혹은 암막커튼으로 뒤덮여진 스산한 곳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됐다. 추리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그런 장소가 아니었던가.
 
독특한 앰블럼의 미스테리 유니온 깃발
 그러나 미스테리 유니온은 색다른 모습이었다. 서점의 이름이 적힌 앰블럼 마크가 펄럭이는 깃발은 흡사 ‘호그와트’를 떠올리게 했고, 원목으로 채워진 공간은 추리소설 보다는 일본소설 배경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미스테리 유니온을 운영하고 있는 유수연 씨는 처음에 ‘나미야 잡화점’을 염두에 두고 이 곳을 구상했다고 한다. 나미야 잡화점이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유명 일본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곳인데 소설 속에서 안락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그는 “추리소설 서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으스스하고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보다는 따뜻하고 편한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서점에 있는) 모든 책들의 제목이 ‘무슨 살인사건’ 이런 거지 않나. 안 그래도 무서운데 분위기까지 무서우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추리소설하면 섬짓한 ‘살인사건’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른다. 유 씨에게 추리소설의 어떤 이면에 매혹돼 마니아를 넘어 전문서점까지 차리게 됐는지를 물었다.
 
그는 “(추리소설은) 일단 재밌지 않나”고 말하면서 “(개인적으로) 복선이나 이야기 구조 등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 같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유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은” 책들이 많이 있다. 이와 더불어 “추리소설도 종류가 다양하다”면서 “정통 추리소설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도서들도 있고 의학, 예술, 법정 미스테리 등 다양한 코드를 지닌 책들도 있다”고 부연했다.
 
때문에 추천도서도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나눠졌다. 그는 ‘정통 추리소설의 맛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또는 다른 고전 작가들의 책을, 여기에 약간 현대적인 소스를 가미하길 바라는 이라면 홍콩 출신 작가인 찬호께이의 ‘13.67’을 추천했다.
 
‘13.67’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흥미를 끌어 무슨 뜻인지 질문하니 유 씨는 “숫자는 년도를 뜻하는데 읽는 방식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면서 “이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된다)”라고 비밀에 부쳤다.
 
추리코드보다 재미나 감동을 먼저 생각하는 이라면 곤도 후미에의 ‘새크리파이스’를, 반전을 노린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아비코 타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과 온다 리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꼽았다. 이 두 책은 작가가 교묘하게 독자를 오독하게끔 만드는 서술트릭이 특징이라 한다.
 
또한 “(추리소설이) 예전엔 ‘누가 죽였을까’에 집중했다면 현대에 올수록 ‘왜 죽였을까’에 관한 주제의식을 갖는다. 이를 파다보면 인간에 향한 깊은 성찰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이 나온다”면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 등 추리소설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추리소설의 세계는 훨씬 더 방대했다. 이렇게 드넓은 세계를 우리는 왜 모르고 있었던 걸까. 여기엔 추리소설을 ‘장르문학’이라 구분 지으며 영역을 좁힌 것이 한몫했다.
 
유 씨는 “추리소설은 독자층도 넓지 않고 진입장벽도 있다”면서 “(추리소설 중)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걸 제외하면 서점에서 보기도, 알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리소설 중에는 베스트셀러 외에도 좋은 책들이 많다고 전했다.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다시 창고에서 나와서 서가의 꽂히는 것이 유 씨 나름의 바람이라고 한다.
 
알파벳&미스테리'라는 테마로 꾸려진 서가
 ‘추리 소설의 재발견’이라는 미스테리 유니온의 모토 역시 같은 줄기에서 태어났다. 이에 관해 유 씨는 “눈에 안 띄어서 (책을) 못 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기 와서 (몰랐던 책을) 재발견하기도 하는 등 사라져 가는 책을 다시 발견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이곳에서는 늘 책과의 새로운 만남이 주선된다. 2시간 남짓 동안 단편추리소설을 돌아가면서 소리 내 읽는 낭독회가 열리거나, “스쳐지나가던 책들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매달 테마를 정해 한 쪽에 배치된 서가를 꾸미기도 한다. 추리소설의 역사를 쫓는 강의도 준비돼있다.
 
추억, 추리소설 또는 편안함, 살인사건. 쉽게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이 곳에 오면 그 이음새를 찾게 될 지도 모른다. 차가웠던 추리소설이 온기로 느껴지는 곳, 미스테리 유니온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