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를 때마다 새롭다, 변화무쌍한 인생처럼”

<사진: 이무성 프리랜서>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소위 스타 가수가 되는 길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가수가 됐다고 해도 히트곡 한 곡 없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무명가수도 많다. 어떤 사람에겐 가수가 ‘최고의 직업’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살이 직업’이기도 하다. 그만큼 가수로 산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30여 년을 가수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가요계 정상에 올랐지만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돌아간 곳은 산이었다. 산을 사랑해 산에 오르고 산을 노래하는 가수 신현대 얘기다.
 
마터호른‧데날리‧엘브루즈 밟고 초오유까지 올라
“더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즐거움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


“난 바람이라면 넌 눈물인가 봐, 난 이슬이라면 넌 꽃잎인가 봐, 부르지도 마 나의 이름을 이젠 정말 들리지 않아, 생각지도 마 지난 일들을 돌아 누운 우리 사랑을”

시 같은 이 노랫말은 1988년 발표된 신현대 작사‧작곡의 ‘난 바람 넌 눈물’이라는 곡의 가사다. 당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신 씨는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후 신 씨는 1990년대 초부터 대중매체에서 모습을 감췄다.
 
정상 자리 버리고
산악인의 길로 들어서

 
일요서울은 가수 신현대를 수소문했다. 대중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만큼 그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을 통해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상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대중 매체에서 사라졌던 신 씨는 산악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며 다부진 몸매가 전형적인 산악인의 모습이었다. 풍문으로 들었던 “산악인 가수가 됐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는 가수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언론에서 자취를 감춘 뒤 1999년 4,478m의 마터호른에 올랐다. 산을 좋아했던 신 씨는 이후 전문 산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음악은 늘 함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산악인 가수’였다.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에 오른 이후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00년에는 북미 최고봉인 6194m의 알래스카 데날리를 올랐고 다음해인 2001년에는 유럽 최고봉인 5642m의 엘브루즈를 올랐다.

그리고 3년 뒤인 2004년에는 8201m 높이의 히말라야 초오유를 올랐다. 당시에는 산악인 강성규 씨와 함께였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가수로서 8,000m급 고산에 오른 사람은 그가 최초라는 말이 나온다.

신 씨는 어렸을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 춘천이 고향이었던 그는 삼악산이나 팔봉산을 자주 올랐고 중학생 때부터는 여름방학만 되면 전국으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한번 여행을 떠나면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난 바람 넌 눈물’은
19살 때 만든 노래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신현대라는 가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30대 후반 40~50대 라면 신 씨의 ‘난 바람 넌 눈물’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가사가 특이 서정적이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 씨에게 이 노래를 만들게 된 배경을 물었다. “그 노래는 19살 때 쓴 노래다. 녹음은 32살 때 했다. 거의 초기작품이다” 신 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초 이 곡은 듀엣곡이 아니었다.

가수 백미현과 인제섭이 듀엣으로 불렀지만 작사‧작곡가였던 신 씨가 기념으로 백씨와 부른 노래가 더 큰 인기를 끌면서 흥행을 하게 됐다. 신 씨는 당시 녹음도 단 두 번 만에 끝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씨는 이 노래로 인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그 노래가 대중에게 나를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사람들이 내 콘서트에 오면 놀란다. 그 노래만 듣던 사람들은 ‘저 (노래는) 완전히 다른데’라고 말한다”며 “(이 노래로 인해) 다른 것들이 가려지니까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난 바람 넌 눈물’이라는 노래로 신 씨는 스타가 된 이후 그는 무용단 음악감독으로도 일했다. 하지만 산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산을 찾게 됐고 산을 타며 산에서 노래하는 가수로 살고 있다.
 
기타 메고 에베레스트에
“산 노래집 마무리하고파”

 
신 씨는 지금도 매주 두 번씩은 산에 오른다. 보름에 한번 씩은 산에서 비박을 하며 작곡과 작사를 한다. 산에 갈 때는 늘 식물도감을 챙긴다. 어릴 적부터 오른 산이지만 아직도 모르는 식물이며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산은 오를 때마다 새롭다”고 말했다. 신 씨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다. 마치 변화무쌍한 인생처럼 산은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즐겁단다. 그에게 산과 음악은 산소와도 같다. 그가 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산과 음악을 사랑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신 씨는 2014년 고인이 된 ‘설악가’를 작곡한 이정훈을 기리기 위해 에베레스트에 기타를 메고 오른 적도 있다. 비록 8300m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7900m에서 노래를 불렀다.

신 씨는 산을 사랑하는 만큼 산 노래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는 지난 2006년 산 노래 1집 ‘바람 눈물 그리고 산’을 냈다. 이 앨범에는 산악인들의 애창곡인 설악가(이정훈 작사·작곡), ‘설악아 잘 있거라(김태호 작사, 정주영 작곡), 아득가(백경호 작사·작곡)와 함께 인수봉, 길, 꽃, 한계령, 저 산 넘어와 같은 자작곡이 실려 있다.

2009년에는 2집 ‘미치도록 그리운 산’을 냈고 최근에는 3집을 작업 중이다.

신 씨는 가수로 활동할 당시에도 물질이나 인기를 쫒지 않았다. 음악을 한 것도 후회하지 않고 산을 다니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단다. 음악을 통해 얻는 기쁨이나 산에서 얻는 기쁨이나 모두 같기 때문이다.

신 씨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산에서 노래하는 가수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산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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