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정치 논리에 휘말리지 않겠다’ 내부선 치열한 논쟁 중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며 보수단체의 활동과 영향력에 힘이 빠지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하에 보수단체장이 구속되거나 변경되는 등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만큼 보수 성향 단체의 활동 축소는 예상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표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와 자유총연맹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누구보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각종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박종환 총재 “어느 정파의 노선을 대변하지 않을 것”
황동규 홍보실장 “이번 회담에서는 진정성 보여줬다”


지난달 27일 오전 8시경 청와대에서 나와 남북정상회담장이었던 판문점으로 향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 장면이 방송을 탔다.

방송 직후 이들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재향군인회) 회원들로 알려지자 방송을 중계하던 앵커는 물론 온라인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속속 올라왔다. 이날 재향군인회와 시민들은 당일 오전 7시부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성공기원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창성동 별관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1.2㎞ 구간에서 긴 행렬을 만들고 ‘정상회담 비핵화 꼭 성공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들었다. 당시 문 대통령을 환송한 재향군인회 회원은 약 6000명이었다.

그동안 보수단체로 알려진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행보는 방송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면 이들도 다른 보수단체와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할 것이란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북정상회담 반대 집회가 아닌 성공기원 행사에 참석했다.
 
남북정상회담 지지하는
재향군인회 ‘어색’

 
재향군인회는 회원 수가 130만 명에 이른다. 군 관련 단체 중 대표 단체로 손꼽힌다. 그동안 재향군인회는 보수적인 정치 색채를 띠어왔다.

지난 2013년 2월 12일에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 핵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우리도 핵무기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당시 재향군인회는 성명에서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전략의 포기를 선언하고 미군의 핵을 배치하면서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또 “국제 사회의 미흡한 대응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며 “미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지구촌의 평화 애호 국가들은 UN의 이름으로 단결해 북한의 핵무기 도발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014년 12월 19일에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 선고에 대해 “이적 종북 통진당 해산을 국민과 함께 환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재향군인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과 헌법을 부정해 온 통진당에 대해 헌재가 해산을 선고했다”며 “향군은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며 헌법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지켜나가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를 한 지난해 11월부터 30여 차례 이상 기자회견을 통해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하며 이적 정당 통진당의 해산 결정만을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판결은 나왔다. 통진당도 국민들도 헌재의 판결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어떤 논리도 대한민국을 지켜 나간다는 대명제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재향군인회는 당시 “통진당과 같은 이적 정당으로 인해 또다시 국력 낭비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적 세력들을 발 붙이게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차제에 이적 정당뿐만 아니라 이적 단체로 판결 받은 단체들의 자동 해산 법제화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이나 2014년 비하면 북한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줄기차게 진행해 오던 핵무기·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해 중단 선언과 폐기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물론 지난 4월 말 남북정상회담이 잘 치러졌고 6월에 예정인 북미회담이 잘 마무리 된다면 핵무기·탄도미사일 개발 중단과 폐기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그동안 북한에 속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보여줬던 그들의 행보는 변화의 바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안보의 본질은 평화”
”안보 단체 정체성 확고히“

 
“비핵화 실현을 위해 간다는 대통령에게 당연히 힘을 실어 줘야죠. 그게 안보단체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황동규 재향군인회 대변인 겸 홍보실장은 지난 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북정사회담에서의 재향군인회의 행동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황 실장은 “안보단체로서 이 땅에 평화가 오고 한반도가 통일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평화의 키 포인트가 비핵화이고, 그 목표를 위해 열린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란 것뿐”이라고 했다.

재향군인회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있었다. 이에 대해 황 실장은 “내부 반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론화를 통해 그렇게 (문 대통령을 환송) 하기로 결정한 거죠. 물론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안보라는 본질이 흐트려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안보의 본질은 결국 평화이니까요.”라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황 실장은 재향군인회의 정체성을 보수 단체가 아닌 안보 단체로 규정했다. 회원 개개인에게 보수 성향이 없지 않지만, 안보라는 가치를 정치적 지향을 뛰어넘어 바라보고 싶다는 의미다.

그는 “이제 보수·진보 논리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이 재향군인회의 성격을 재정의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합창의장 출신인 김진호 예비역 대장이 2016년 1월 36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황 실장은 “재향군인회가 정치 논리에 의해 흔들리던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회장님이 취임하면서 안보 단체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재향군인회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 실장은 “북한이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전에 보여준 적이 없던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안을 대체적으로 수용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저희는 국가 안보의 제2 보루라고 자칭합니다. 정부가 안보 논리에 맞지 않는 정책을 내세운다면 비판에 나서야죠. 하지만 국가 안보 정책이 정당하다면 국가가 추진하는 일을 적극 지지하고 뒷받침해 줘야죠. 그게 저희의 역할입니다.”라고 말했다.
 
자유총연맹
‘정치적 중립 지키겠다’

 
조직의 규모나 역사성으로 볼 때 재향군인회와 함께 보수단체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단체는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유총연맹)이다.

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 확산 활동’ 등을 주요 사업분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 보수단체다. 회원 수는 약 350만 명이다. 하지만 자유총연맹도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달 19일 17대 총재에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이 취임했다. 신임 박 총재는 문재인 대통령과 경희대 법대 동기로 40년 지기다. 그런 만큼 일각에서는 그의 총재 취임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 총재는 취임식 취임사를 통해 “자유총연맹은 앞으로 완전한 정치 중립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진보, 보수 이념 논리에 단체가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제가 총재로 있는 한 절대 어느 정파의 노선을 대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간 존엄 및 자유와 관용의 미덕을 담은 우리 헌법의 숭고한 가치가 바로 우리 자유총연맹의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부정과 비리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상시 감시체계를 도입해 운영에 투명성과 균형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유총연맹이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자 보수 진영에서는 역시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유총연맹은 지난달 30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대해 “한반도의 획기적 번영과 민족의 역사적 숙원을 이루기 위한 거대한 발걸음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자유총연맹은 이날 낸 성명서에서 “우리 민족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 원칙을 확인하고 남북의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획기적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점으로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판문점 선언에서 밝힌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 공동행사를 비롯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위해 우리 자총의 역할을 여러모로 모색하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북한은 각종 선언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차례의 핵무기 실험과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등으로 끊임없이 도발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긴장과 불안을 조성했다”며 “북한의 변화를 신중히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안
“즉각 폐기하라”

 
자유총연맹은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교육부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확실히 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 4일 ‘교육부는 헌법을 위배하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을 즉각 폐기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통해 자유총연맹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이 청소년의 올바른 교육을 해치고 국민을 오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유총연맹은 “우리는 이번 집필 기준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려는 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며,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교육부의 ‘자유’를 삭제한 집필 기준 발표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로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문제는 소모적이고 필요치 않은 갈등과 논쟁을 부를 우려가 다분하니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 ‘찬성’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자유총연맹의 행보는 앞으로가 더욱 더 중요할 전망이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보수 색채를 버리고 정치적 중립 내지는 진보의 색채를 띨지는 더 두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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