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를 해서라도 막아야한다.”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을 놓고 보험업계가 잔뜩 긴장한 가운데, 삼성생명 등 메이저업체들을 중심으로 국회를 향한 적극적인 로비를 시도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장성보험마저 은행창구를 통해 판매될 경우,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주요 보험사들은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내년 4월에 시행되는 방카슈랑스(은행창구를 통한 보험판매) 2단계 확대안은 보험업계의 최대 화두다.

방카슈랑스 1단계 시행을 통해 은행권의 막강한 영업망 위력을 실감한 보험업계는 자동차보험과 보장성 보험까지 판매 범위가 확대되는 방카슈랑스 2단계 시행을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는 자동차 보험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실정으로, 이를 은행에 개방하면 중소형 회사들은 살아남기 어렵다며 아우성이다. 보장성 보험 상품을 주력으로 하는 생명보험업계도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보장성 보험 상품은 저축성 상품과 달리 설계사들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주소득원이다. 생명보험사들은 “생명보험 가구 가입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포화 상태인 시장에 은행이 들어오면 밀려나는 쪽은 결국 힘없는 설계사들”이라며 “이미 보험업계 설계사들은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섰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방카슈랑스 시행이후 설계사가 올린 보험료 비중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카슈랑스 도입이후 올 7월까지 11개월 동안 설계사들이 판매한 보험상품의 초회 보험료는 조금 늘었지만, 전체 초회보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8%에서 36.0%로 무려 15.8%나 줄었다.생명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현재 저축성 보험에 이어 내년에 보장성 보험까지 방카슈랑스가 본격 실시되면 설계사 판매채널 비중이 크게 줄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업계 전문가들도 내년 2차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설계사 조직이 현행 대비 최대 30~5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급기야 삼성생명·대한생명·교보생명 등 보험업계 메이저업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국회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이 국회 입법사항인 보험업법개정안에 따라 이뤄지는 만큼 국회의원 로비를 통해 내년 보장성보험 판매시행을 막아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메이저업체들은 각 영업지점에 방카슈랑스 시행에 따른 보험설계사 대량실직위기를 강조하는 교육 자료까지 배포하면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을 집단 항의 방문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카슈랑스의 문제점 및 업계 입장’이라는 교육자료집은 방카슈랑스의 단계적 확대시행으로 보장성보험이 개방될 경우 설계사들은 2004년 16만6,000여명에서 2010년 7만4,000여명으로 감소, 은행의 부당 판매행위 급증,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생보사 비용전가 등의폐해가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최근 생명사 대리점 직원과 보험설계사들은 지역별로 그룹을 형성, 각각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 사무실을 집단 방문해 방카슈랑스 시행을 연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의 한 보좌관은 “추석연휴 며칠 전 의원 지역구에 있는 삼성생명 대리점 소장과 팀장이라는 사람이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과 관련해 설명을 하러 방문 하겠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보좌관에게 전화를 건 지역 대리점 소장은 “본사에서 의원을 방문했는지 점검하니 꼭 찾아가 만났으면 한다”고 말해, 이 같은 로비작업이 대형보험사 본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삼성생명 관계자는 “본사가 체계적으로 지점에 지시를 내린적은 결코 없다. 각 영업점 지점장이나 설계사들이 개별적으로 방카슈랑스 시행의 부당함에 대해 알리는 과정에서 ‘로비’라는 말이 불거진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시행에 반대하고 있지만, 각 기업들은 협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걸고 나서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고 말했다.

반면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개별적으로 설명회를 가질 뿐, 협회가 직접 나서 국회 로비를 지시하거나 시행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손해보험협회 노조 직원 10명이 국회 정무위원실을 찾았다. 이들은 각자 담당 국회의원을 한명씩 맡아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 연기’를 요구하는 브리핑을 가졌다. 정무위 소속 의원의 한 비서관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국회를 방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카슈랑스 시행을 놓고 국회를 찾는 보험업 관계자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이런 상황을 두고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보험업계가 방카슈랑스 문제에 대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특히 보장성 상품이 은행을 통해 판매되더라도 시장 잠식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보장성 상품은 설계가 까다로운 만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며 “비전문가인 은행 창구 직원들에게 보험을 가입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은 계약기간이 10~30년으로 긴데다 위험보장이란 특별 요소가 붙는다. 보험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을 탈수 있는 구조로, 사고발생 확률이나 사고의 범위, 또 질병의 경우 보장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항상 다툼이 생긴다. 이 때문에 보험상품은 설계사 등 별도의 판매조직을 통해 판매된다. 이들 설계사들은 고객을 찾아가 보험의 내용을 설명하고, 또 고객이 어느 수준의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은지 등 여러 문제를 고려해 보험 계약을 체결한다. 이런 점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은행이 판매하는 보장성 보험 상품의 편의성, 가격 경쟁력 등만 보고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카슈랑스란" 보험상품의 은행 판매

방카슈랑스는 보험상품을 은행창구를 통해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 유럽에서 시작돼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어로 은행을 뜻하는 ‘방크’와 보험을 뜻하는 ‘아슈랑스’란 단어가 합해져 이뤄진 용어다.지금까지 고객들은 보험 설계사들의 권유로 보험에 가입하던 것을 이제는 방카슈랑스를 통해 은행에서 예금에 가입하듯 고객의 필요에 따라 보험상품을 골라 구입할 수 있다. 결국 방카슈랑스를 이용해 고객은 보험상품을 포함한 모든 금융상품을 가까운 은행 지점에서 손쉽게 구입하고 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장점만 취한 복합상품도 접할 수 있다. 보험, 예금, 투자 상품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금융정보와 개인자산관리 컨설팅 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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