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이동통신업계가 더욱 뜨거운 공방전으로 치닫고 있다. KTF와 LG텔레콤이 이달 초 ‘SK텔레콤이 번호이동성제도 시행이후 이탈하는 가입자 수를 축소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대량의 허수개통을 일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SK텔레콤은 ‘사실 확인도 없이 무작정 흠집을 내기 위한 전략’이라며 맞대응했다. 이에 정통부 통신위원회가 수사에 착수했다. 번호이동성제도에 따른 3사의 공방전에 대리점 업주, 네티즌들까지 가세한 이동통신업계의 복마전을 집중 취재했다. “010-****-1111” … … “ … 사용자의 요청으로 착신이 금지되어있습니다.” 이른바 ‘골드번호’라 불리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면, 이러한 메시지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분명 번호는 있는데, 받는 사람은 없는 경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이 ‘골드번호’는 미리 업계에서 개통시킨 후, 고객들에게 분배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일선 대리점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단말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개통을 시켜두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듯 이동통신 업체나 일선 대리점에서 실가입자가 아닌 타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시켜 놓고 나중에 수요가 있을 때 명의를 변경하는 행위, 즉 ‘가개통’은 전기통신사업법상 불법행위에 해당된다.이동통신 업체 대리점에 근무한다는 정 모(경기도 수원시)씨는 “통상적으로 가개통된 휴대폰을 구입하는 실수요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동안의 요금도 함께 청구 받는 경우가 많다. 소액의 요금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가개통’ 부지기수 최근 SK텔레콤이 번호이동성제도 시행 이후, 이탈하는 가입자 수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대량의 가개통을 실시했다는 의혹이 KTF와 LG텔레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KTF와 LGT 측은 “번호 이동제 시행에 들어가기 전 이동통신 3사가 상호 실적 교환에 합의해 자료를 교환해왔으나, 1월 20일부터 SK텔레콤 측에서 실적교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들 주장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19일까지 20일 동안 SK텔레콤은 신규가입과 해지를 모두 감안할 때 총 9만8,000명의 감소가 있었다.

그러나 1월 20일 이후부터는 SKT측이 실적을 교환하지 않다가 1월말에 들어 순수 감소자가 1만7,000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SKT측이 조직적으로 가개통 등을 통해 가입자 수를 부풀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LGT 관계자는 “1일 평균 1만명의 SKT가입자들이 KTF와 LGT로 번호 이동을 하고 있는데 불과 10일만에 SKT의 순수 감소자가 이처럼 줄어든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SKT의 대규모 가개통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또 “SK텔레콤이 실적교환을 중단한 20일 이후부터 1월 말까지 대규모의 가개통을 시도해 010 신규가입자 수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같은 기간, KTF와 LGT는 각각 36만5,000명, 10만1,000명의 가입자가 증가했다. 이는 현재 ‘번호이동 시차제’ 실시로 인해, KTF와 LGT 가입자들은 타 이동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할 수 없다는 이점이 작용했다.최근 충남·대전지역 SKT 대리점에서 유출된 한 문건은 SKT의 대량 가개통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2월 이동전화 추가공지사항’이라는 이 문건에는 가개통에 따른 세부 지침까지 담겨있는데, 구체적으로 가개통 휴대폰에는 별도의 특판코드를 부여해 관리토록 지시하는가 하면, 월말 가개통 잔량 등도 보고하도록 명시했다.또 가개통 휴대폰을 구입하는 고객이 이를 알지 못하도록, 명의변경 시 발송되는 SMS(단문메시지)를 보내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되어있다. ‘신규가입 감사’ 대신 ‘명의변경 감사’메시지가 발송되면, 이용자들의 불만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KTF측은 “번호이동제로 인해 SKT의 가입자가 계속 감소하자, 이미지 손상을 우려한 SKT측이 대략 5만∼10만대의 가개통을 조직적으로 지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KT,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나”SK텔레콤은 이 문건에 대해 본사에서 내린 지침이 아닌, 해당 지방 영업센터에서 하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SKT 관계자는 “가개통은 일선 대리점들 사이에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상시 존재하는 것으로, 어느 이동통신사도 가개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명의로 여러개의 번호가 개통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가개통으로 간주, 본사차원에서 영업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으나, 수 천개에 달하는 대리점을 완벽하게 감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통신업계 측도 ‘가개통은 너나 할 것 없이 각 대리점에서 공공연히 행해져온 사실’이라는 분위기다.

다만 본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느냐 여부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한편,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 가개통 의혹에 관한 조사에 착수, 각 대리점 등을 상대로 현장조사를 진행중이다. 통신위 관계자는 “그 동안 계속된 조사로 가개통 행위가 많이 근절되었지만, 최근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있다”며, 폭넓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이동통신업계 관행 상, KTF와 LGT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향후 통신위 조사 결과에 따라 업계 3사에 강력한 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