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여당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대승을 거둔 민주당은 곧장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을 발표한 반면, 야권 정당들은 일제히 분쇄와 쇄신의 작업에 돌입했다. 자유한국당은 당 해체를, 바른미래당은 지도부 사퇴라는 중대 결정을 내려 당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여론조사는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었다. 여러 의미에서 여론조사기관의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과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선거가 거듭됨에 따라 자사를 포함해 많은 여론조사 기관들은 더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 여론조사 결과들이 과연 국민들의 여론을 대변하고 있는가? 또 진실된 여론을 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여론조사의 중대성과 경각심은 현 정부에 들어와 더욱 더 증대되어 왔다.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정과제 영역에서도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문제는 여론조사 상에서 드러나지 않은 소수 의견들이 다수의 의견에 의해 가려지고, 점점 다수의 여론으로 쏠려버리는 편승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는 국민의 여론을 들어 분석할 뿐이다. 집합체일 뿐, 모두의 의견도 아닐뿐더러 모두를 담을 수도 없다. ‘기타의견’을 받고 있는 전화면접조사 조차도 모든 여론을 수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마치 그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확정된 사안인 것과 같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소수의견을 무시당한 유권자는 여론조사를 불신하여 이내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게 된다. ‘샤이’라 불리는 유권자층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과 경남 지역이 여론조사-실제 득표율 간 차이를 보인 이유는 앞서 말한 ‘샤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줄곧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10프로 중반에 머물렀던 김문수 전 지사와 안철수 전 대표는 실제 선거에서는 20% 안팎의 득표율을 보였다.
 
김경수 후보(현 경남도지사 당선자)와 김태호 후보 간 득표율 격차는 10%~20%라 예측한 다수의 여론조사와는 달리 9% 이내로 나타났다. 실제 여론과 여론조사 간 왜곡이 발생한 것이고, 소수의견이 결국 여론조사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에서, 그들의 능력을 보여야 할 정부 관계자들 역시 ‘일단 정부안을 발표하고, 반대가 심하면, 여론조사로 결정한다.’식의 후안무치한 행정을 자행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정치·행정에 이용되는 순간, 행정당국자들의 행정적 책임은 말소되어 버린다. 여론을 따랐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맹신하여 승리를 확신했던 미국 켈리포니아 주지사 후보 브래들리, 미국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힐러리 클링턴이 그랬다. 특히 한국의 여론조사는 마치 인기투표와 같이 변질되어가고 있다. 그렇다 하여 조사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이다. 다양한 의견이 조율되고 협의되며 협상과 타협을 이끌어야 할 국회의 업무를 대신할 수 없다. 또한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에서의 한 수단일 뿐 소통의 여부를 대신할 수 없다. 결국 여론조사는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선택의 결정적 요인이 돼서는 안된다. 정부기관들 또한 여론조사를 통해 그들의 책무인 행정·입법 절차를 간소화시켜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여론은 고요한 심층해류가 아니다. 수면 위의 파도처럼 바람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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