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승려들의 범죄 의혹 위기 놓인 조계종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총국에 위치한 설조스님 단식장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청정 도량이어야 할 곳이 싸움터가 됐다. 조계종은 현재 종단 고위 승려들이 은처자와 재산 은닉, 성희롱 등의 의혹에 휘말려 있다. 게다가 성폭력, 도박장 개설 의혹 등도 제기되며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세수로 여든여덟인 설조스님은 큰스님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한 달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총무원 측은 ‘한 사람 물러난다고 종단 바뀌는 것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적폐 논란이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의혹에 의혹이 덧붙는 모양새다.


- ‘단식농성’ 설조스님, 감기로 쇠약…”생각할 기력은 있다”
- 총무원 측 “혁신위 조사 결과 기다려 봐야”
 


지난 18일 찾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총국은 조계종의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플래카드들로 어지러웠다. ‘불자들은 부끄럽다. 총무원장 사퇴하라’, ‘조계종이 청정해야 나라가 청정하다’ 등이 그것이다.

설조스님(87)의 단식장임을 알리는 안내푯말을 따라 올라가면 4평 남짓한 크기의 농성장이 마련돼 있다. 이 공간은 설조스님의 단식장과 자원봉사자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나뉘어 있다.

농성장 한가운데는 주요 언론사의 제보 내선 번호가 적혀있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농성장을 찾는 사람들이 방송사에 취재요청을 해 달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었다. 조계종단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방명록에는 200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단식 시작 29일째인 설조스님의 공간엔 조그만 베개와 여름용 이불 등 침구류와 500㎖ 생수 묶음,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다.

특히 설조스님의 양옆에 있는 선풍기 두 대는 입구 쪽을 향했다. 이는 방문객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내부의 열기를 밖으로 빼내기 위함이었다.

목소리가 약해진 설조스님은 방문객들에게 작은 마이크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병든 이 종단에 나도 책임이 있다. 이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극한 단식 기도를 하게 됐다”며 “교단 종사자들이 교단의 내규를 어지럽히면서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마치 치외법권인 양 간과된다면 교단은 다시 맑아질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유독 설조스님의 얼굴이 핼쑥해진 이유를 묻자 한 자원봉사자는 “스님이 감기에 걸리셨다. 폭염이라고 하지만 밤에 자연 바람과 선풍기 바람을 쐬었더니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셨다. 걱정이 많이 된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설조스님은 병원행을 거부하며 단식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조계종 사태의 뿌리는 깊다. 전임 총무원장의 각종 비위 의혹 등이 지난해 10월 제기되며 승려들과 신자가 조계종 적폐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A승려, 허위 학력 시인
관건은 ‘숨겨놓은 딸’

 

여기에 MBC 시사 교양프로그램 ‘PD수첩’은 올해 승려들의 학력위조, 재산, 은처자, 도박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눈덩어리처럼 불어났다.

먼저 A 승려는 서울대 농과대학 졸업 허위 학력과 한국고건축박물관 재산 은닉, 친자 의혹을 받았다.

A 승려는 지난 선거 때 서울대 농과대 졸업이 아니라 방송통신대 농학과를 나온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 가장 뜨거운 쟁점은 ‘숨겨놓은 딸’ 여부다. 은처자 의혹은 엄격한 정결법을 요구하는 승려에겐 큰 흠결이 된다.

불교 정보 매체인 ‘불교닷컴’은 당시 “약 30년 전 A 승려가 사미니(비구니계를 받기 전 출가 초기 여승) 김모씨와 사이에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A 승려의 친형 호적에 입적됐다”며 “지난 1999년 당시 9살이던 J 양이 친모를 법정대리인으로 해 A 승려에게 친자확인소송까지 제기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총국에 있는 농성장

여기에 “A 승려가 13차례에 걸쳐 5800만 원, 누이동생이 1억2000만 원, 그 외 조카와 또 다른 여동생 등도 수시로 돈을 J 양에게 송금했다”라고 전했다. 친자가 아니라면 거액을 송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J 양이 나타나 검사를 자발적으로 하기 전엔 사실상 친자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J 양의 친모는 현재 미국에서 결혼해 뉴욕에 거주 중으로 소재 파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승려에 대한 성추행 2건과 유흥업소 출입 의혹도 제기됐다. PD수첩에 따르면 B 승려는 유흥업소에 상시로 드나들며 법인카드 사용을 남발했고 2차 회식자리에서 통영의 한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

C 승려는 여종무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고 있다. 신도들에 따르면 C 승려는 지난 3월 16일 늦은 밤 여종무원에게 “내 생각도 안 하고 자나”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여종무원은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 밖에도 회주와 종무원 사이에서 오고 가기에는 부적절한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게 신도들의 주장이다.
 

도박·성추행·재산은닉
부인한 종단 고위승려
 


권승들의 성폭력 의혹은 더욱 참담하다. PD수첩에 따르면 D 승려는 지난 1990년대 초 2명의 승려를 성폭행했다.

이후에도 만나자는 연락과 성추행 등을 지속적으로 해 두 승려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아버지는 충격에 세상을 떠났다.

신라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모 사찰은 도박 장소가 됐다. 이 사찰의 주지 승려를 중심으로 승려들이 이곳에서 도박판을 벌였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 더 나아가 승려들은 모 승려가 댄 도박 자금으로 마카오, 라스베이거스 등을 돌며 원정 도박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신도들의 한숨을 불러일으켰다.

조계종 고위 승려 모두가 범죄 의혹에 휩싸인 것은 종단 역사 이래 최초다.

A·B·C 승려 등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B 승려는 “만일 나에 대한 의혹들이 사실이면 승복을 벗겠다”라고 강력히 부인했고 D 승려는 “1990년부터 허리 디스크를 앓아 1993년 5월 7일 강남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일상적인 생활조차도 어려운 허리 디스크 환자가 물리력을 행사해 성폭행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한달여간 의혹을 조사한 총무원 측은 지난달 11일 출범한 ‘교권 자주 및 혁신 위원회’(혁신위)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는 종단의 혁신위가 현 총무원장이 입김 아래 있는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해 조계종 고위 승려들의 잘못이 바로 잡혀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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