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강력부 통합과 약화되는 검찰의 특별수사 역량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가 사라진지 5년이 흘렀다. 중수부는 ‘검찰총장 친위대’로 불리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명성을 떨쳤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사건들이 중수부 검찰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이제 중수부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중수부 폐지 이후 대체 부서도 생겨났지만 중수부 때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 경찰과 수사권 독립 등의 문제로 검찰 힘이 빠지는 상황까지 겹치자 ‘검찰의 전성시대가 다 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나쁜 놈 잡는 검사 시대’ 정말 끝이 난 걸까.
 
대통령‧정치인‧기업 총수까지 겨눴던 검찰의 칼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직접 수사 범위도 좁아져


2013년 4월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 10층에서는 중수부 현판 강하식이 열렸다. 이날 강하식과 함께 중수부의 업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중수부라는 이름이 생긴 지 32년, 전신인 중앙수사국이 발족한 지 52년 만이다.

중수부는 권력형 비리사건과 대형 경제범죄 사건을 수사하며 전직 대통령과 친인척, 유력 정치인, 대기업 총수 등을 사법처리했지만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검찰총장의 칼’
중수부

 
대검 중수부의 전신인 대검 중앙수사국은 1961년 발족하고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아 일선 지검에서 다룰 수 없는 대형 사건을 직접 맡아 왔다. 이후 특별수사부, 중앙수사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중앙수사국은 1966년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비료가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 58t을 밀수하다 적발됐지만 축소 처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중앙수사국이 직접 수사에 나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를 구속하는 등 모두 3명의 책임자를 사법처리했다.

이후 이름을 바꾼 중수부는 1982년 군부 독재로 악명을 떨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을 구속기소하는 강단을 보여 주면서 국내 최고의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금융거래에서 최대 규모의 어음 사기 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에서 장씨는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였다.

중수부는 장 씨 부부가 2600억여 원 상당의 약속어음을 사채시장이나 시중에 유통시켜 돈을 가로챈 혐의를 적발하고 이들을 구속기소하는 한편 이 사장의 금품수수 혐의도 밝혀내 구속기소했다.

이 때문에 예금·적금의 비밀을 보장하는 법률을 폐지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중수부는 또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기업으로부터 4500억 원을 헌납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비리를 적발하고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해 국민의 큰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수부 폐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중수부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점, 대형 사건의 성격상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정치 검찰’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중수부는 1997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대출 업무와 국정감사에서 편의를 봐 달라며 은행장과 유력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사건을 수사한 뒤 홍모 의원 등 10명을 구속기소했지만 몸통이 아닌 깃털만 수사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홍 전 의원은 자신을 깃털에 비유하며 ‘배후 세력’의 존재를 암시하고, 출처와 사용처 등이 정확하지 않다는 등 수 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중수부는 이를 밝혀내지 못해 ‘축소·은폐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2009년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뇌물 공여 및 불법 정치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올렸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창설 이래 가장 심한 역풍을 맞았다.

이 때문에 중수부 존립에 의문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거세졌다.
 
직접 수사 기능 없는
반부패부

 
중수부 폐지 후 대검찰청은 전국 특별수사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반부패부를 같은 해 12월 5일 출범시켰다.

반부패부는 검찰 개혁 일환으로 폐지된 중수부를 대체하는 조직으로 직접 수사 기능은 없어지고 전국 특별수사를 지휘·감독·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초대 반부패부장에는 오세인(48·사법연수원 18기) 검사장이 임명됐다. 산하에는 수사지휘과·수사지원과 등 2개과가 신설됐었다.

수사지휘과는 일선청 특별수사를 지휘·감독·조정하고 다른 기관에서 이첩된 사건을 처리·관리 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수사지원과는 회계 분석 및 자금 추적 등 특별수사 지원, 범죄수익 환수, 수사기법 연구, 국제수사공조, 유관기관 협업 등을 맡았다.

반부패부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중수부 때와 비교해 검찰의 특별수사 역량이 약화됐다는 지적은 계속됐다. 그러자 대검은 2016년 1월에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켰다.

당시 검사장이었던 김기동 단장을 포함해 특별수사나 금융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12명이 함께해 전국의 ‘칼잡이’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니 중수부’라고도 불렸지만 처음 맡았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마지막 사건이 돼 버렸다.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특별수사단 소속 검사 일부가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팀으로 차출되면서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당시 특별수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공약이자 정치권의 요구로 폐지된 중수부를 부활시킨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 규모를 대폭 축소해 출범시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검찰이 수사한다는 말’
사라질지도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지난 13일 대검 강력부와 반부패부 통합을 발표했다. 반부패‧강력부는 산하에 수사지휘과, 수사지원과, 범죄수익환수과, 마약과, 조직범죄과 등을 둔다. 이러한 조직 변화에 대해 검찰들은 사실상 특별수사가 막을 내렸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으로 이제 검찰은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 데다 조폭‧마약 등 강력사건은 경찰이 전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검사가 직접 나쁜 놈들을 잡는 시대는 갔다. 대신 검사는 이들 범죄자들의 기소와 공소유지에 힘써야 하는 시대다.

대다수 검찰들은 시대의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한다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검찰만이 해결할 수 있는 수사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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