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복당파’ 23명·‘중립’ 30여 명·그 외 ‘친박’. 현재 자유한국당의 계파 구도다. 친박과 비박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다. 지선 참패 후 이들은 서로 한 끗의 양보도 없이 생존을 위한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김병준 비대위가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자연히 당내 역학 구도엔 또다시 심상찮은 바람이 불 조짐이다. ‘친박·비박’, ‘잔류파·복당파’로 분류됐던 구도가 이제는 ‘親김병준·反김병준’으로 나뉘고 있는 것. ‘통합과 전진’· ‘포용과 도전’·‘보수의 미래 포럼’ 등의 ‘의원 모임’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 겉으로는 ‘합리적인 보수’·‘생활 보수’등 거창한 목표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엔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한 잔략적 ‘생존 모임’이라는 관측이다.
 

- 모임으로 세(勢) 확장… 비대위 ‘쇄신 드라이브’ 때 ‘파워 게임’ 발생 가능성
- “당권 주자들, 모임 통해 전대 출마 준비 중”… 모임 영향력 공천과 직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까지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의 계파는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분류됐다. 친박, 진박(진짜 친박), 원박(원조 친박), 멀박(친박에서 멀어짐), 주비야박(주간엔 비박, 야간엔 친박) 등 계파를 구분 짓는 갖가지 용어들이 난무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복당할 때 까지도 당내 계파는 친박과 비박 양대 계파에, 친박은 진박-친박-범친박으로 나뉘고 복당파는 비박계로 흡수되는 비교적 간단한 구도로 정리되는 듯했다.
 
‘개인’보단 ‘공동
대응’ 유리 판단...
 

그러나 6.13 지방선거 참패 후 한국당 내 계파 구도는 급격히 세분화됐다. 비대위 출범을 앞두고 의총에서 펼쳐진 세 대결 양상만 보더라도 더이상 복당파-잔류파와 같은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은 불가능했다.

당내 구도가 복당파냐 잔류파냐, 잔류파 중에서도 복당파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느냐 온건하게 대응하느냐 등의 태세에 따라 세분화된 것이다. 여기에 친박 중에서도 온건파와 강경파가 나뉘고 복당파 내에서도 김무성 의원과 거리를 두는 비주류가 생겨났다. 설상가상으로 친박도 비박도 아닌 중립조차 강경파와 온건파로 성격이 분류된다. 친홍준표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4일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하자 당내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유명무실했던 ‘의원모임’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은 이들의 움직임이 당내 권력 지형과 연관이 있다고 평가한다.
 
당장 각 모임의 구성원 대다수가 같은 계파 출신이다. 이는 ‘의원모임’이 앞으로 비대위가 추진할 인적 쇄신을 포함한 향후 혁신의 향배와 권력 구도를 가늠하기 위한 ‘생존 모임’의 성격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개별 국회의원의 당원협의회 위원장 자격 박탈 등 인적 쇄신 작업에 돌입할 경우 ‘개인’보다는 ‘모임’에 소속돼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켠 모임은 ‘통합과 전진’이다. 지난달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모임에는 한국당 잔류파 의원들로 분류되는 김기선·김도읍·박대출·박맹우·윤영석·이완영·정용기 등 재선 의원들과 강석진·민경욱·박완수·엄용수·이은권·송희경 등 초선 의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모임의 성격을 친박계도 비박계도 아닌 이른바 중립지대 의원들이 모여 합리적이면서도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새로운 보수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구성원 대다수가 6.13 지방선거 참패 후 김성태 원내대표와 김무성 의원 등 복당파의 ‘2선 후퇴’를 요구했던 의원들이다. 차후에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물론 현재까지 당내 다수 의견은 당분간 김 위원장을 믿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당 쇄신 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임에 소속된 한 재선 의원은 “당분간은 비대위의 당 쇄신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필요하다면 당내 현안에 대한 목소리도 내겠다”고 말했다.
 
폭풍전야 한국당,
‘공천 혈투’ 예고

 
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당내 의원 모임이 새롭게 구성되거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비대위의 당 쇄신 움직임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차기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당은 현재 당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력이 없다. 현재 임시체제인 ‘김병준 비대위’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아직은 공고한 구심점이 없다. 의원들이 모여 일정 규모 이상의 세를 형성하여 한목소리를 낸다면 비대위는 ‘파워게임’에서 밀려 휘청거릴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만약 비대위가 당 쇄신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시기에 각 모임에서 반대 목소리를 낸다면 ‘김병준 비대위’역시 ‘인명진 비대위’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 각 모임에서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 선출 과정에도 직·간접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구성되는 차기 지도부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천권을 거머쥠에 따라 각 모임의 영향력은 곧 자신들의 공천과도 직결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선 중진급의 당권 주자들도 이런 의원 모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당대회 준비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면서 “내년 초께 예정된 전당대회에 앞서 미리 당내 의원들과 교류하며 세를 확장하겠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 모임 가운데서 특히 충청권 모임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충청 대망론의 불씨를 다시 피울 것으로 평가되는 이완구 전 총리가 차기 당대표 후보군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완구 전 총리 측은 “‘추대’라면 몰라도 ‘경선’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
 
한편 ‘통합과 전진’ 외에도 활동이 잠잠했던 모임들 역시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현재 한국당 내에는 ‘포용과 도전’, ‘보수의 미래 포럼’과 같은 공부 모임을 비롯해 충청권 의원 모임, 초선 의원 모임, 재선 의원 모임, 4선 이상 중진 의원 모임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