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제공과 기업 분식회계 관련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사내 법무팀을 강화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에 대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각종 소송이 빗발칠 것으로 보여, 기업들로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키 위해 법무라인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각 기업들의 법무팀은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해부했다. 법무팀은 기업의 규모와 비례한다? 정확한 통계가 나온 바는 없지만, 기업현실에서 이 말은 거의 맞아떨어진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국내외 기업전문변호사들을 대거 임원으로 채용해, 각종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반면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법무팀을 운영하고 있지 않으며, 이 중 14%는 법무담당 직원을 단 한명도 고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법무팀은 각종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에서 검찰 수사와 같은 정치적 현안까지 다양한 법률소송에 대비하는 기업의 선봉장 역할을 담당한다. 또 각종 인맥과 정보망을 동원해 검찰 수사의 향방을 가늠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법무팀은 관리업무만 담당하기도 한다. 이번 대선자금수사처럼 큰 사안이 발생할 경우 법무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김&장, 태평양, 율촌, 세종 등 매머드급 법무법인에 의뢰, 변호를 맡기는 편이다.

최근에는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들이 검찰 출신 변호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2005년부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시민단체를 비롯해 소액주주, 외국인 투자자 등으로부터 각종 소송이 폭발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기업들도 올 상반기 중으로 앞다투어 법무팀을 신설하거나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삼성그룹은 재계서열 1위답게 최대규모의 법무팀을 가동하고 있다. 그룹 구조조정본부인원 140명중 법무팀 인원이 10%를 차지한다. 또 각 계열사별로 자체적인 법무팀이 가동되고 있다. 과거 전두환 전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지검 특수 1,2부 출신의 김용철 전무를 중심으로 검사출신 7명, 판사출신 4명, 변호사 임원 23명 등 34명의 법조인이 구조본부 및 계열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으로 재직중인 김용철 전무는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83년 사법시험에 합격, 97년부터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재무팀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법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룹 수뇌부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 전무는 대선자금 수사의 핵인 대검중수부 남기춘 주임검사와 사시25회 동기다. 김 전무 외에도 이현동 상무(29회), 엄대현 상무(31회), 김영호 상무(33회), 이기옥 상무(사시 34회) 등 검찰출신의 임원급이 삼성 법무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판사출신인 김윤근 삼성전자 상무(33회), 신명훈 삼성전자 상무(사시 33회), 여남구 구조본 상무(30회) 등이 가세하고 있다. 또 김은미 삼성카드 상무는 서울지법 판사출신으로 그룹 내 여성 법무 인력의 중심이다. 삼성그룹의 법무팀은 변호사 자격증 보유자만 수십여명이 포진해 있어 웬만한 규모의 법무법인을 능가하고 있다. 삼성은 이러한 법무라인을 바탕으로 검찰 수사방향과 수사진행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법무팀이 본격 가동된 시기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소송이 제기되면서 부터다.

삼성 법무팀은 세종·태평양·김&장 등 국내 유수 법무법인들과 공조하기도 하지만 민감한 사안은 자체 인력으로 처리하기도 한다.법무팀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11층 삼성구조조정본부 산하에 있다.계열분리와 LG카드사태를 치른 LG그룹 역시 법무팀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재계 최초로 김상헌 법무팀장(상무)을 그룹 지주회사인 (주)LG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시킴으로써 검찰수사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김상헌 부사장은 LG그룹 사상 최연소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서울법대를 나온 김상헌 부사장은 시울지법 판사를 역임했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LG전자에는 권오준 상무(31회, 판사출신)가 포진해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는 김준호 변호사(41회), 정광일 변호사(41회), 정인호 변호사(40회) 등이 있다. LG그룹은 굵직한 사안의 경우 외부 법무법인과의 공조를 통해 해결한다. LG의 주 의뢰처는 김&장. 특히 이번 대선자금수사는 김&장 법무법인에서 변호를 담당한다.

SK 투톱체제를 이끌었던 손길승 회장이 분식회계혐의로 구속되고, 오는 3월 소버린과의 지분경쟁을 앞두고 있는 SK그룹은 법무팀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 그룹 내 법무팀은 없고 SK텔레콤을 비롯한 계열사에 법무팀이 구성되어 있다. <사진3>SK의 법무팀은 타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법무인력에 대한 지원만큼은 재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룹차원에서 법학전공자들을 발탁해 해외 로스쿨로 유학을 보내기 때문이다. 윤순한 SK텔레콤 상무(법무실장)가 대표적인 케이스다.서울법대 출신인 윤 상무는 회사 지원으로 미국뉴욕주립대 대학원을 마치고 변호사자격증을 취득, 그 동안 SK에 대한 각종 검찰수사를 담당해왔다. SK텔레콤 법무팀은 국제변호사 출신의 신승국 팀장을 중심으로 20여명이 근무 중 이며, 미국 변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 지난해 법무실 내에 지적재산권(IP)팀을 신설하는 등 지적재산권 소송에도 적극 대비하고 있어 이동통신업계 중 가장 체계적이라는 평이다. SK(주) 법무팀도 국제변호사인 황석진 상무가 이끌고 있으며, 국제변호사들이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SK의 경우, 판·검사 출신 등 국내 법률가들이 없어, 분식회계와 대선자금 수사와 같은 현안은 외부 법률사무소를 통해 해결하는데, 현재는 대검 수사기획관을 역임한 김&장의 이종왕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종왕 변호사는 안대희 대검중수부장과 사시 동기(17회)이다. 현재 2명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역시 법률사무소에 자문을 받으며, 검찰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법무팀에는 15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고, 임영철 팀장(이사)이 지휘하고 있다. 임 이사는 변호사출신은 아니지만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82년 현대에 입사했다.현대차 법무팀 역시 주요 현안에 대한 법률자문은 김&장과 태평양, 율촌 등 외부 법인에 의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집단소송제도 도입에 대비키 위해 상반기 중으로 법무팀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는 계획이다.별도의 법무팀이 없는 롯데그룹의 경우 법무팀 신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롯데는 특히 중량감있는 법조계 인사를 영입해 법무라인을 조직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까지는 각 현안마다 계열사 자체적으로 외부 변호사를 선임해 해결해왔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세종 법무법인에 맡겨놓고 있다.이러한 법무팀 강화 분위기에 대해 제계 관계자는 “그 동안 기업내에 법무인력을 두면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집단소송제 도입의 여파로 기업들사이에 위기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