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손학규‧정동영 등판 움직임… “세대교체 실패 책임 물어야”

왼쪽부터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뉴시스>
‘새 인물 발굴’ 마지막 과제 해결 가능하단 긍정 시각도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여의도에 ‘올드보이’ 시대가 왔다.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등 원로급 인사들이 당 전면에 나서는 양상이다. 6070 중진 정치인들이 소속 정당의 대표직을 차지하거나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세대교체 실패의 반작용으로 ‘한물 간’ 인물들이 다시 재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새 인물 발굴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정치 생명 연장에만 급급한 꼴이라는 비판도 크다. 이러한 논란을 딛고 올드보이들이 화려하게 귀환할 수 있을지 정치권의 귀추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출사표를 던진 세 후보 중 김진표(71)‧이해찬(66) 의원이 ‘올드보이’로 분류된다. 당내 막내 그룹인 ‘86세대’ 맏형격인 송영길(55) 의원이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해 ‘큰 형님’들과 경쟁 중이다.
 
현재로서는 차기 당대표 자리에 이 후보가 오를 공산이 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8.25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자 지지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후보가 김‧송 후보를 오차범위 밖 격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만777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바에 따르면 이해찬 후보가 31.8%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김진표 후보(22.4%)와 송영길 후보(21.6%)가 초박빙의 격차로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없음’ 12.9%, ‘잘모름’ 11.3%로 집계됐다.
 
선거 결과 예측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민주당 지지층(1,056명, ±3.0%p)에 대한 조사에서도 역시 이 후보 38.5%, 송 후보 22.3%, 김 후보 21.4%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에게 접촉해 최종 2012명이 응답했다. 무선전화 100%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걸기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2%p. 자세한 사항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바른미래당의 경우에도 9.2전당대회 당대표 부문에 손학규(71) 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 부상했다. 여러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지만 손 전 위원장이 당권을 쟁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평화당은 이미 2007년 여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66) 의원을 지난 5일 당 대표로 선출했다.
 
6.13지방선거 참패로 당 수습에 나선 자유한국당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차기 당권 주자로 김무성(68)‧정우택(65)‧홍준표(64) 전 대표 등 60대 중반 이상의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대항마로 나설 ‘젊은 피’가 전무하다는 관측이다.
 
‘인물부재’ 부작용
 
이 같은 올드보이 출현의 배경에는 ‘세대교체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각 당에서 6070이 부재한 동안 이렇다 할 50대 정치인이 등장하지 못했고, 이것이 올드보이 재등판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해석이다.
 
한 정치 전문가는 “각 당이 ‘올드보이’들의 경륜을 능가할 만한 젊은 리더 발굴에 실패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민주당의 경우 송 의원이 컷오프를 통과해 형님들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지만, 이인영 의원이 컷오프에서 탈락하는 등 ‘86세대’로 대표되는 50대 인사들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한국당의 경우에도 ‘젊은 피’로 분류되던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을 놓친 것이 뼈아픈 대목이다. ‘남원정’으로 불리며 당내 새 바람을 일으켰던 이들을 안착시키는 데 실패한 것. 남경필(54) 전 경기도지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고, 원희룡 제주지사와 정병국 의원은 각각 탈당의 길을 걸었다.
 
바른미래당 역시 두 축이었던 ‘안철수(58)-유승민(60)’이 떠난 후 바통을 받을 적임자를 찾지 못한 게 손 전 위원장의 복귀를 재촉했다는 해석이다.
 
또 각 당이 추구하는 가치 구현에 실패한 것이 이들의 귀환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당 재정비에 실패한 데 이어, 이 여파로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에만 매몰된 탓에 당 가치 및 노선 재정립에 실패했다는 해석이다. 바른미래당의 경우에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며 주창했던 ‘새 정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세대교체’ 발목 잡는 ‘올드보이’
 
이 같은 상황에 정치권에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본인들 스스로가 후배 양성에 실패해 놓고, 과거 인지도를 내세워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초선 의원은 “이들의 귀환이 ‘세대교체 실패’를 방증하는 처사 아니겠냐. 새 인물을 키워내지 못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며 “이에 대해 자성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10년 전 사람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당대표 하는 게 무슨 희생이냐. 노후 대책이 안 돼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판(정치판)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라고 ‘올드보이’를 향해 날 선 비판을 남겼다.
 
특히 ‘혁신’과 ‘소통’에 가장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 언론매체가 진행한 38명의 초선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해찬 후보는 소통과 혁신 부문에서 단 6표로 김진표 후보와 함께 가장 낮은 표를 받았다. 경쟁자인 송영길 후보는 이 후보를 두고 “제2의 불통 지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드보이의 귀환이 역설적으로 정치권 세대교체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이들이 2020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인재 양성’이라는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또 이들의 경륜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계 개편 정국에서 정치적 흐름을 잘 짚어내고 변곡점을 잘 이끌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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