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후 백화점들의 세일 행진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로 강남권 상류층들마저 지갑을 닫았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상층 고객이 주를 이루는 백화점 매출이 급격한 감소추세다. 백화점도 백화점이지만 더 죽어나는 것은 입점업체다. 매출감소를 이유로 백화점 측이 입점업체에 입점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행사·이벤트 등을 강요하며 매출 스트레스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매출 실적이 좋지 않으면 입점 6개월만에 퇴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롯데백화점 명동본점 옆에 위치한 롯데영플라자 5층 매장 직원은 “10월에만 5층 매장 입점 업체의 반 이상이 물갈이 됐다”며 “타백화점보다 롯데백화점측이 물갈이가 심한 편”이라고 전했다.세일시즌이면 평일·주말과 상관없이, 오전과 오후를 가리지 않고 항상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백화점 매장이 요즘처럼 한산한 적이 있을까.가장 많은 고객들로 북적대는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도, 지하1층, 지상 1·2층 매장을 제외하곤 한산한 모습이다.

롯데백화점 매장 직원은 “최근엔 국내 고객보다 중국·일본 고객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고객을 끌기위해 세일이 연일 이어지지만 그 효과는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은 “요즘 정상가로 물건을 구입하면 ‘바보’라는 소릴 듣는다”며 “세일이 잦아지다 보니, 백화점 판매가격을 신뢰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롯데백화점측은 “세일 행사 횟수가 예년보다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경기불황으로 저가 행사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근 롯데백화점 매출은 지난 2002년 11월 이후 중간중간 반짝 증가세를 보이긴 했지만 2년째 하향 곡선이다. 타 백화점들도 실상은 마찬가지다. 더욱이 업계전문가들이 “올해보다 내년 전망이 더 어둡다”고 예측하고 있어, 업계엔 ‘백화점 위기론’마저 돌고 있다. 본점은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다. 지방점과 수도권 지점의 상황은 심각하다.

롯데영플라자 매장 직원은 “단일가 판매, 할인 행사 등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점 매장 수수료가 백화점 매출의 70%이상을 차지하다보니, 백화점 매출 저조는 바로 입점 매장 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져 입점업체에 불황의 책임이 넘겨지고 있다. 최근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은 백화점 개편과 함께, 1층에 입점해 있는 액세서리 매장을 지하 1층으로 내려 보냈다. 신규 브랜드업체들도 지난 10월에 새롭게 입점했다. 신규업체들의 경우 수수료 인상이 있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백화점 한 관계자는 “가을 매장 개편 때 입점한 신규 브랜드업체들이 기존 업체들 보다 불리한 수준으로 계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백화점이 받는 입점 수수료는 입점업체의 성격별로 각 층별·품목별·브랜드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의류 브랜드의 경우 일반적으로 30~35%의 수수료를 백화점 측에 지급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의류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낮은 편이고, 신규 업체들은 높은 수수료를 백화점에 지급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저조한 지방점의 경우는 최근 본점과 같은 수준으로 수수료가 올라,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롯데백화점 측은 “수수료율을 올렸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 무근”이라며 “수수료 인상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매출저조와 수수료율 부담이 높아지자 가을 MD개편 때 퇴출된 입점업체 수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롯데영플라자가 입점 매장 변동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롯데백화점은 일별·월별·층별·브랜드별로 목표 매출을 주고 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는 업체는 매장 개편 때 퇴출하거나 매장 뒤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롯데영플라자 의류매장 직원은 “매장이 자주 빠져 분기별로 여러 업체들이 들락날락한다”며 “5층에 위치한 저가 의류매장의 경우 지난달에만 반이상 교체됐다”고 말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퇴출업체와 신규입점업체의 교체수도 늘었지만, 층별 이동 횟수가 높다고 한다.

한 의류브랜드 직원은 “각 업체들에 적용되는 입점수수료가 차별화돼, 서로가 공개하지는 않지만, 층별로 입점 수수료가 다르다보니 이동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영플라자 매장 직원들을 상대로 입점시기를 조사한 결과 올해 3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신규입점한 업체수가 3분의 1 정도에 다다랐다. 최근 의류업체 중 소르젠떼, 프라이언, 켄 컬렉션, 쏘베이직, 조앤루이스, 베이직하우스, 클라이드, 쿨하스, 카파, EXR 등이 백화점에서 매장을 뺀 것으로 알려지지만 백화점 측에서는 “업체들의 이미지 보호상 퇴출업체 명단 공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각 백화점 지점의 입점 업체들은 “백화점 직원이 직접 매출 압박을 한다”며 “업체들끼리 매출 부풀리기를 한다는 말도 들린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입점업체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판매사원들 통장에 돈을 넣어주고 해당 백화점 매장에서 구매하도록 해 매출을 부풀린다고 귀띔했다. 롯데백화점의 한 입점업체는 “롯데백화점 정도면 연 1~2억원이상 매출을 올려야 붙어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행사·이벤트 등의 판촉을 강요하고, 광고비용을 부가하는 사례도 늘었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롯데호텔서 패션쇼를 열면서 고객 초청비용 1인당 5만원을 패션쇼에 참가한 7~8개 브랜드에 분담시켜 빈축을 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주관의 행사냐 입점업체들 주관의 행사냐에 따라 비용 분담 체계가 다르다”며 “판촉·광고를 강요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런 일방적인 백화점의 횡포가 국내 입점 업체들에만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1층 각 코너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명품 브랜드 매장들은 임대방식으로 매장을 내주거나, 10%선의 저율의 수수료로 영업이 가능하도록 백화점 측이 배려해 주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들이 명품·고가제품 위주로 매장을 구성하는 것이 추세”라며 “해외 유명 브랜드들에 유리한 조건으로 매장을 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역시 명품·고급화를 추구하며, 구 한일은행부지에 내년 중에 5,000평 규모의 명품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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