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바뀔 때마다 ‘법사위 개혁’ 입장 달라지는 정치권

<뉴시스>
계류 법안 1만 건 돌파했는데… 여 위원장 “법사위 권한 축소 없을 것”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후반기 국회 원 구성 협상 당시 ‘화약고’였다. 여야는 법사위원장 자리와 법사위 개선을 놓고 막판 진통을 겪었다. 법사위를 둘러싼 다툼이 치열한 것은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법사위가 한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다. 법사위가 ‘작은 본회의’ 또는 ‘상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에 ‘법사위 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매번 대두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제자리걸음’만 이어가는 형국이다.
 
법사위는 각 교섭단체 간사와 위원장을 포함한 18인으로 구성된다. 올해 제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를 이끌 위원장은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3선)이다. 여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20대 국회 전반기는 물론 초선이던 제18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에서 활동했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당시 당내 지방자치안전위원장과 법률지원단장 등을 맡았다.
 
이번 법사위는 더불어민주당 8명, 자유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2명,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1명, 비교섭단체 의원 0명으로 구성됐다. 여당 간사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유한국당 간사는 김도읍 의원, 바른미래당 간사는 오신환 의원,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은 박지원 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표창원·조응천 의원, 자유한국당 장제원·이완영·이은재 의원이 속해 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도 법사위 소속이다. 이번 법사위원들은 법조인과 비법조인이 각각 9명씩 반반으로 구성됐다.
 
체계·자구 심사 기능
‘몽니 부리기’ 부작용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친 법률안이라도 본회의에 올라가기 위해선 모두 법사위로 넘어가 체계 및 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형식적 심사만이 아니라 실질적 심사를 해 통과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여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른바, ‘날치기 법안 통과’ 방지를 위해 법사위원장은 제1야당 의원이 맡는 것이 관례다. 법사위가 법안의 ‘마지막 관문’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절차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제기돼 왔다. 개혁입법이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 발목이 잡혀 폐기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법사위가 여야 간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법사위가 ‘법안의 무덤’, 단원제인 대한민국 국회 내 ‘상원’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상임위에서 통과됐지만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민생 법안만 1만 건을 넘어섰다.
 
특히 2소위원회 문제는 타 상임위의 불만 대상이다. 법사위는 제1소위원회와 제2소위원회로 나뉜다. 제1소위는 사법제도 같은 고유 정책과 형사소송법 등 법과 관련된 법을 다루며, 제2소위는 타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안들을 다시 심사한다. 제1소위는 항상 소속 위원들 간에 이견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제2소위는 정당 간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대립한다.
 
국회에서 만든 모든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 특성상 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를 마친 법안이라도 2소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본회의 상정이 사실상 불가능기 때문이다. 또 2소위는 만장일치가 관례라 특정 의원 한 사람만 반대해도 법안 처리가 지연되다가 회기가 끝나 폐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2소위원장은 관례상 야당 간사가 맡고 있어 여당이 중점 추진하는 법안 ‘가로막기’가 심각했다.
 
실제로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상임위를 통과해 올라온 북한인권법 처리를 고의로 지연해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위원장은 여당인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이 추진하는 각종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아 당시 여당이 ‘이상민 방지법’이라는 명칭으로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개혁 논의 ‘또’ 흐지부지
‘정쟁의 장’ 전락 우려

 
역대 국회에서 이어져 온 법사위 논쟁이 여야가 바뀔 때마다 입장이 180도로 달라진다는 특징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당 시절엔 야당 몫인 법사위의 권한을 축소하자고 했다가 야당이 되면 다시 권한 유지를 주장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민주당은 여당 2년 차인 올해 초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사위 소속 표창원 민주당 의원 역시 통화에서 “법제위 권한 축소에 대해 동의한다”라며 “타 상임위에서 이미 의결이 된 법안을 별도로 다시 심의하며 ‘상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문제 하나라도 발견되면 해당 부처 장관을 출석시켜 정쟁용 질의를 이어가고 있다”라며 “법사위 자체가 정쟁의 마당이 되는 구도는 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2소위 폐지 논의와 관련해서도 “폐지에 찬성한다”며 “제도 자체도 폐지돼야 하지만 전체회의에서 2소위로 회부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법안 심사는 2소위가 아니라 전문 위원실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2일 국회 법사위가 발표한 소위원회 구성 확정안에 따르면 표 의원은 2소위에 배치됐다.
 
이 같은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한국당 측은 “아주 독재적이고 오만한 태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 역시 지난 7월 17일 KBS 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법사위 권한 축소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제2소위가 게이트키핑 역할을 해 왔다는 지적에 대해 “소위에 회부되거나 전체회의에 계류된 법안은 다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야권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위헌 소지나 타 법률과 상충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지금 현재의 제도로도 운영의 묘만 살린다면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당이던 2015년엔 김성태 의원이 유사한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표 의원은 “우리도 야당 때 법사위를 정치적인 비판과 공격의 장으로 활용했던 사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야당의 한국당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면서도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이미 법제위 개혁에 구두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는 지난 7월 10일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타결한 후 운영위원회에 법사위 개혁을 위한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논의키로 했다. 원 구성 합의문에도 해당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논의조차 시작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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