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국회의원과 수행비서는 특수한 관계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두 사람은 공식 비공식 일정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전화나 대화 내용도 접하기 때문에 신뢰 관계 형성이 최우선이다. 특히 운전을 하면서 수행도 함께할 경우에는 더하다. 의전도 중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들은 최측근을 수행비서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류가 바뀌고 있다. 수행비서진이 젊어지고 있고 운전과 의전뿐만 아니라 SNS 홍보 등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사생활이 없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18년 동안 국회에서 운전과 수행비서 역할을 한 A씨는 “신뢰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 “심기 운전 사라진 지 오래… 운전·의전뿐 아니라 SNS도”
- “정시출퇴근 육체는 편하나 정신은 더 피곤”

 
국회 의원회관 휴게실에 만난 운전과 수행을 동시에 하는 국회의원 수행비서 A씨는 담배부터 물었다. 그는 올해 나이 40대후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나라당 출신 S 전 의원을 모시면서 국회에 입문해 현재까지 18년 동안 의원 수행비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수행비서 중에서도 원로급이다. 그는 “요즘은 수행비서 나이도 젊어지고 업무 영역도 예전과 다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예전에는 운전하는 수행비서들 사이에 ‘심기 운전’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단순히 운전과 의전을 하는 게 아니라 영감(국회의원)의 기분을 살피면서 수행과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A씨는 “정기국회나 임시국회, 국정감사 기간에는 24시간 국회의원 회관 내 휴게실에서 대기했는데 수행비서들 잡담으로 시끌벅적했다”며 “수행비서로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운전과 수행 관련 정보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나름대로 재밌었다”고 회고 했다.
 
수행비서 대기실 ‘텅텅’
사무실에서 ‘SNS홍보’

 
그러나 이런 풍토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정시 출근 정시퇴근하는 수행비서도 적지 않다”며 “회관 휴게실에 6시 이후에 가면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예전보다 육체적으로 많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N 의원은 운전하는 수행 비서에게 월차를 줘 다른 보좌진들이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운전하는 수행기사를 철저하게 직원으로 대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 수행 겸 운전하는 비서의 경우 모시는 영감의 공식·비공식 일정을 함께 하기 때문에 은밀한 비밀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또한 사적인 전화통화와 가족 사항을 알고 있어 의원의 최측근 인사들이 맡아 왔다. 수행비서의 직급은 9급이지만 4급 보좌관이나 5급 비서관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자칫 의원 귀에 들어갈 경우 자리 보전도 힘들기 때문이다.
 
의원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수행비서를 보좌진들이 돌아가면서 한다는 뜻은 그만큼 보좌진 9명을 신뢰하거나 아니면 수행비서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란 게 A씨의 전언이다.
 
그는 “지금은 운전만 하는 수행비서는 없다. 의원들이 남는 시간에 SNS 홍보 업무를 시켜 쉬는 시간도 없이 사무실에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동영상까지 올리는 비서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야당의 다른 A 수행비서는 동영상이 되는 카메라를 들고 영감 일정을 따라다니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영감과 수행비서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면서 육체적으로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국회의원과 수행비서의 신뢰관계에 금이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가 변한 것도 사실이지만 잇따라 터지는 수행비서의 비리 폭로가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아킬레스건이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좋지 않은 감정으로 퇴사할 경우 언론이나 SNS에 폭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30대女와 혈세 데이트’로 논란이 된 함승희 강원랜드 전 대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함 전 대표는 30대 여성과 3년간 데이트를 하면서 314건의 결제를 법인카드로 했다고 모 매체가 단독 보도했다.
 
의원과 수행비서 신뢰
‘금’간 사유를 보니...

 
그런데 함 전 회장이 반박할 때마다 재반박한 인사들 다수가 옛 수행비서와 운전기사다. 예를 들어 ‘포럼 법인카드로 사용했다’고 함 전 대표가 반박하면 옛 비서진들은 “직접 법인카드로 결제를 매번 했다”고 했고 “해외 출장을 2~3차례 동행한 게 다다”고 해명하면 “1~2번 빼고 매번 해외출장을 동행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A비서는 “통상 강원랜드 사장 정도 되면 법인카드 외에도 현금으로 판공비를 주는 것으로 안다”며 “내역을 보면 명품백을 사준 것도 아니고 반찬가게, 커피숍, 빵집, 레스토랑 정도인데 법인카드로 쓴 게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보기에도 내부자가 언론사에 제보해 정보공개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정권이 바뀌고 벌어지는 후폭풍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김지은 수행비서의 ‘성폭행’ 폭로도 마찬가지다. 김 비서의 폭로로 안 전 지사는 당권·대권의 꿈이 사실상 물 건너갔고 정치적 생명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의원과 수행비서의 신뢰가 무너지고 위상도 떨어지면서 수행비서의 일탈도 많아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전직 국회의원 수행비서가 인맥을 동원해 중소기업 사장에게 금품을 받아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1700만 원 정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4월 말에는 자유한국당 C의원의 차를 운전하는 수행비서가 오전에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서초구에서 의원을 태운 채 신호를 위반해 유턴하던 차를 경찰이 붙잡았다. 수행비서는 다음 날 사표를 제출했고 곧바로 수리됐다.
 
A비서는 최근 터진 수행비서의 불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유한국당 K 의원의 수행비서로 의원이 해외에 나간 사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을 꼽았다. 그는 “나도 잘 아는 젊은 친구인데 주식 투자로 경제적 손실이 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안다”며 “동종 업계에 있으면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예전 같이 의원과 수행비서가 믿고 따르는 관계면 상의를 해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의원의 해외 체류 중에 자살을 한 것을 보면 세상이 참 냉정하게 느껴진다”며 “편해졌지만 외로워진 직업군이 우리”라고 말을 맺었다.
 
가족보다 국회의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행비서다.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직을 떠나도 의원들이 끝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서로 신뢰가 무너져 가면서 살가운 대화보다 업무적 대화가 늘어나고 입법기관을 모신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급격히 샐러리맨화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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