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1 정부 사전인지 사실은폐 의혹

김선일씨의 피살이후 가장 크게 일고 있는 의문이 정부의 사전인지 여부다. 일각에서 정부가 지난 18일 파병 발표를 앞두고 반대여론을 우려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그 동안 이라크 무장세력이 김씨 비디오를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한 이후 김씨 피랍 사실을 6월 21일 새벽에 카타르 대사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서야 알게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AP 통신사의 텔레비전 뉴스인 이 지난 6월 초 김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납치돼 진술하는 비디오테이프를 확보, 한국 외교부에 문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져 파문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6월23일(현지시간) “6월초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바그다드 APTN 사무실로 김선일씨의 모습이 담겨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전달받았다”며 “6월 첫째주에 김씨에 대해 한국 외교부에 문의를 했으나 외교부로부터 ‘한국인이 납치됐다는 보고를 듣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보도한 것. 외교부는 이 보도와 관련 지난 24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AP통신이 공개한 비디오 관련 외교부에서 문의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 현재 외교부에서 자체조사 중”이라며 “AP로부터 그런 문의 받았다는 사실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AP는 24일 오후 외교부 측에 회신을 보내 “지난 3일 AP 통신은 한국 외교통신부에 전화를 걸어 ‘김선일씨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됐는지 알고 있느냐’고 문의했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AP 통신의 잭 스토크(Jack Stokes) 공보국장은 AP 통신 기자의 질문을 받은 “외교부 한 관리는 ‘외교부는 그런 이름의 한국인 및 다른 한국인이 실종됐거나 피랍됐다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스토크 국장은 “외교부와의 통화에서 AP 통신 기자는 한국인이 실종됐는지 독자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APTN에 전달된 비디오테이프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회신에서 밝혔다.AP 보도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던 외교부도 지난 25일 AP통신과의 전화통화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자체조사결과 아중동국 사무관 등 5명의 직원이 연관돼 있었고 이들은 AP의 전화를 받았지만,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인 납치라는 민감한 사안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이에 대해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직원들의 실수 있었을 지언정 은폐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외교부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함께 정부의 은폐의혹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테이프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밟지 않은 대목은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의혹2 김천호 사장 이상한 행보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진술도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사장은 그 동안 김선일씨의 피랍시점과 관련 계속 진술을 바꾸는 등 석연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 김 사장은 지난 21일 새벽 4시 <알자지라>방송에 피랍 사실이 보도된 뒤 이라크 한국대사관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씨의 납치 시점을 17일로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저녁 국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선 “4∼5일 전 미군 쪽으로부터 실종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말해 납치 시점에 혼선을 빚게 했다. 하지만 이라크 현지에서 취재중인 김영미 프리랜서 PD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대사관 직원이 김씨가 5월 31일 납치된 것으로 추정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하자, 김 사장은 <연합뉴스>에 “김씨가 지난 5월31일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근처의 미군기지 리지웨이로 갔으며, 지난 6월10일경 무장세력에 의해 억류 중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5월 31일이 납치된 시점이라면 김 사장은 20일 가까이 이같은 사실을 숨겨와 의혹을 자초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지난 22일 외교부에 제출한 사유서에서 “정확한 피랍 날짜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은 황망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사장은 김씨가 납치된 지난 달 31일부터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김씨의 납치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일까지 3주 동안 주 이라크 한국 대사관을 4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이라크 대사관측은 김 사장이 방문을 했지만, 직원 김씨의 상황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이에 대해 “납치범들이 대사관이나 경찰에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아 김선일씨의 신변을 우려해 대사관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 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씨가 납치돼 있는 기간 동안 대사관측에 알리지 않고 이라크 현지직원과 아랍인 변호사 등을 통해 여섯 차례나 석방 협상을 벌였다고 했다. 그는 또 협상분위기가 좋아 곧 풀려날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무장단체가 ‘이라크 파병철회와 서희.제마부대 철수’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들고 비디오를 알자지라 방송에 보냈던 점을 고려할 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또 귀국을 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6월 30일 이전에는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말한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의문3 미군은 정말 몰랐나?

미군이 정말 김씨의 납치 사실을 몰랐을까? 이에 대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정부에 확인한 결과 미 정부도 CNN 보도 사실을 접하고 피랍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지난 23일 저녁에 배포한 참고자료를 통해 “미국의 피납사실 사전인지 문제는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의 진술이 유일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정부가 확인한 바로는 김천호 사장의 진술 어디에도 미국 측으로부터 피랍 사실을 통보 받았다거나, 혹은 김 사장이 미군에 피랍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NSC는 또 “이라크 현지에 파견된 우리 군 관계자가 사건 해당지역 미군 지휘관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피랍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군이 김씨 납치 사실을 알고도 한국군의 추가파병에 부정적인 여론이 일까봐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나무역 김 사장은 지난 6월 초 미국 측 사업 파트너로부터 김씨 실종사실을 전해 들었고 김씨와 함께 미국 헬리버튼 계열 케이비아르(KBR) 직원도 억류됐었다고 했다. 또 미 해병대 측이 김씨 문제로 20일경 김 사장에게 ‘급히 만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후 “미군 측으로부터 통보를 받거나 김씨 석방을 위해 미군 측과 직접 면담한 사실이 없다”면서 “원청업자인 미국의 모회사 측에 이를 통보한 만큼 자연스럽게 이 회사가 미군 측에 통보했을 것으로 보았다”고 말해 이전에 했던 자신의 말을 바꾸었다. 김 사장은 “경황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부인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오히려 김 사장의 진술 번복에 ‘말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더욱 큰 의혹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군의 사전인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지난 18일 한국군의 파병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김씨의 납치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정부가 18일 파병발표를 할 수 있었겠냐는 점이다.

피랍전 친구 심성대씨에 보낸 김선일씨의 날짜별 이메일 내용

5월 8일 “한국인 거의 다 떠났다”5월 15일 휴가가면 자장면 실컷 먹고파5월 30일 휴가잡힌 6월말 빨리 왔으면피살된 김씨는 친구 심성대씨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근황과 심경을 보내왔다. 심씨가 공개한 김씨의 이메일을 보면 현지에 머무르면서 느꼈던 김씨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5월 8일자 메일에는 이라크에서 떠나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김씨는 “한국인들이 거의 다 떠나가고 교회팀들도 떠나간 요즘 우리 회사직원들 다섯 명이 조촐하게 예배를 3주째 드리고 있다”면서 “내 거취문제를 놓고 기도를 부탁한다. 이제는 정말로 여기에 있기가 싫다. 하루빨리 한국에 가고 싶은데, 빨리 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해다오. 정말로 가고 싶다. 정말로…”라고 적고 있다. 5월 15일 메일에는 귀국에 대한 설렘이 담겨있다.

김씨는 “5월말이나 늦어도 6월초쯤에는 약 20일간의 일정으로 휴가 갈 예정이다”며 “휴가 간다고 생각하니깐 조금 들뜬 기분이다. 빨리 가서 너하고 OO보고 싶고 김치하고 자장면 그리고 OO가 해주는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글도 남겼다. 김씨는 “약자에 대한 마음도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며 “소름끼치는 미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도 가지고 갈거다. 결코 나는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즈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에 대한 인상은 좋은 편이었는데, 여기와서 다 허물어졌다”고 적었다. 납치되기 하루 전에 보낸 5월 30일자 메일에는 “요즘은 달력을 더욱더 자주 보게 된다. 휴가 날짜 때문에 빨리 6월말이 왔으면 좋겠는데”라며 휴가날짜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김씨는 또 AP가 공개한 비디오에서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했다. 이 비디오에서 김씨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진짜 테러리스트다. 한국에 있을 때 이라크 전을 봤다. 이라크전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인들이 싫다. 미군 캠프에 물품을 대기는 했지만 나는 미국 사람들과 군인들, 부시를 싫어한다. 지금 현실은 불공평하다. 미군들은 팔루자 등에서 이라크 사람들을 죽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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