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은 기업의 문제점만이라도 파악하라”


‘한남동’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한남동은 재벌총수들의 집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풍수지리가들 조차도 한남동에는 재물운이 깃들여져 있고, 한강이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1인 시위현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1인 시위의 경우 신고가 필요 없는데다 직접 총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시위자들이 몰리고 있다. 일각에선 총수들의 출근시간에 목소리를 내려다 이를 저지하는 임직원들과 충돌을 빚기도 한다. [일요서울]은 최근 한달간 이 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일부 시위자들을 만나 그 사연을 들어봤다.

한남동 일대가 시끄럽다. 한남동은 기업 총수들이 많이 모여 있어 조용한 동네로 알려지는 곳이다. 각 동네마다 CCTV들만이 작동될 뿐 사람들의 움직임이 적다. 그런데 최근 몇 일 동안 이 일대에 웅성웅성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일부 입에 검은 색으로 ‘x’표가 그려진 마스크와 피켓을 든 사람들도 적잖이 보인다. 피켓을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당 기업의 부당함을 알리기 일쑤다.


1인 시위로 몸살 앓는 한남동 재벌가

[일요서울]이 지난 4일 한남동 일대를 찾았을 때도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LG전자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는 화물연대 경남지부 창원동부지회 LG분회 소속 노조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화물연대를 교섭주체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며 지난 19일부터 여의도 LG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했다. 그는 해당일의 집회를 마치고 구 회장 자택 앞에 와 1인 시위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후문 앞에서도 또 한 명의 노조원이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피켓을 올려 보였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어나가는 구 회장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한남동 유엔 빌리지 내 KEC 곽정소 회장 자택 앞에서 KEC 강윤호 금속노조 부장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다. 강 부장은 구미 KEC 사업장 폐쇄를 한 사측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곽 회장 및 사측은 무조건적인 타임오프제 수용 의견을 고수하며 우리와의 협상을 거의 단절하다시피 한다. 이 협상을 통해 우리들의 요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계속 상주할 예정”이라며 “몇 명이 돌아가면서 1인 피켓 시위를 한다. 근처 놀이터에서 잠깐 쉰다. 서울의 연고지가 없어서 잠은 찜질방에서 해결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지난 7월 28일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집 앞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한남동 유엔 빌리지 입구에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10여명이 차 한 대를 막아서면서 승강이가 벌어졌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 4명이 차에서 내려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하면서 옥신각신했던 것이다. 이들은 기아자동차 소속으로 사측의 성실한 임금ㆍ단체 교섭을 촉구하고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자택 앞으로 1인 시위를 하러 가던 참이었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해당 기업 회장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로 간 것인데, (회장을 만나)호소하기도 전에 제지당했다. 회장 자택 인근은 모두 방어집회가 신청돼 있어 집회신청이 불가피해 이곳을 찾은 것뿐이다”며 합법적인 시위를 막는 의도에 대한 불편함을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LG노조원은 “회장이 집에 있지 않아 유감이다. 그러나 한남동은 부촌이다. 여러 재벌총수 및 대기업 임원 그리고 외국 대사관들이 많다. 골목을 지나가는 그들에게 LG전자가 우리에게 행하는 만행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고 1인 시위의 뜻을 밝혔다.


긴장하는 해당 기업 홍보실

해당 기업 홍보실도 바짝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위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한데 자칫 회장과의 마찰까지 언론에 보도될 경우 그 피해가 뒤따를 것이란 우려다.

실제 모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회사를 대표하는 분과의 마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경우 이미지 타격이 예상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췄다.

모 기업의 경우 1주일간 총수의 집 인근에서 직원들이 돌아가며 때 아닌 보초를 서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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