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생체실험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의 생체실험 의혹은 그동안 탈북자 등의 증언을 통해 수차례 불거진 바 있다. 이와관련 영국 BBC방송은 지난 2월과 7월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악으로의 접근’(Access to Evil)과 ‘인간 모르모트’라는 제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측은 “탈북자들의 진술에는 과장이 많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통일부 국감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비공개 상영, 북한의 생체실험 의혹과 관련한 정부측 입장과 대책을 추궁했다.

<일요서울>은 21일 통일부 국감장에서 비공개리에 상영된 비디오 테이프를 단독입수 했다. 영국 BBC방송이 제작하고 홍 의원측이 자막(한국어) 처리한 이 비디오에는 생체실험에 직접 참여했다는 화학자 K박사와 정치범 수용소 수석 간수였던 K씨 등 탈북자 다수의 증언이 기록돼 있다.비디오에 따르면 K박사는 “가스주입관이 설치된 유리 밀실에 어린이들을 포함해 정치범 가족들을 함께 가두고 이들이 모두 피를 토하고 죽을 때까지 2~3시간 가스실험이 진행된다.특히 이 생체실험은 서울시 전체를 궤멸할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증언하고 있다.또 수용소 간수 출신인 K씨는 “정치범과 그 가족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당시엔 별 죄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며 “남쪽으로 귀순한 뒤 이러한 사실을 증언했지만 정부에서 그런 말을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비디오엔 통일부 고위관계자인 S 정책실장도 등장한다. BBC 기자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에서 S실장은 “남북문제를 오랫동안 다룬 경험에서 보았을 때 탈북자들의 진술에는 과장이 많이 섞여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정치범들을 생체실험 도구로 쓰는 건 무척 심각하고 잔인한 행위인데 거짓이라고 보는가”라는 BBC 기자의 질문에 S실장은 “글세,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기자가 “북한에 식량도 조달하고 경제적 협력도 하며 접촉을 유지하면서 왜 그런 중요한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S실장은 “지금 남북간에는 50년만에 드디어 화해·협력의 무드에 들어갔는데 그 문제를 공개했다가 일을 그르칠 순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증언과 한국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장이 반영된 BBC 방송의 ‘악으로의 접근’ 다규멘터리는 지난 5월 ‘2004년 국제사면위원회 다규멘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진위 논란이 일자 BBC측은 지난 7월 추가로 ‘인간 모르모트’를 제작, 방송하기도 했다. 21일 통일부 국감장에서도 북한의 생체실험 의혹과 관련한 설전이 벌어졌다. BBC 다규멘터리를 입수, 한국어 자막 처리 작업을 마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이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정부의 미온적인 자세를 강하게 질타했다.준비한 비디오를 상영해 줄 것을 위원장에게 요청한 홍 의원은 비공개 상영이 끝난후 정 장관에게 “K박사가 밝힌 유독화학물질 화학식을 한국화학연구원 생명의약부에 문의한 결과 시안화나트륨을 원료로 하는 파라-시아노니트로벤젠으로 확인됐다”며 “왜 정부가 이런 사실을 숨기려 하느냐. 정부가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있느냐”고 추궁했다.

홍 의원은 또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 중 1,000톤을 미사일이나 장사정포 등에 장착해 한반도를 공격할 경우 인구 4,000만명을 살상할 수 있으며 북한은 유사시 1만2,000톤의 생화학무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다”며 “한반도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답변하라”고 질타했다.홍 의원의 이러한 추궁에 대해 정 장관은 “K씨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K씨 모친과 전처를 통해 확인해보니 그가 베이징 대사관에 근무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었고, 회령 인근 정치범 수용소에서 있었던 사실도 없었다”고 주장했다.‘정부가 생체실험을 증언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정 장관은 “과거 안전기획부라면 몰라도, 참여정부의 국가정보원에서 탈북자를 고문 압박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K씨가 귀순후 관계기관 합동신문을 하는 과정에서도 정치범 수용소와 관련한 내용을 증언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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