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2007년으로 돌려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해 10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리고 퇴임 후인 2008101일 서울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10.4 남북정상 선언 1주년 기념 위원회'가 주최한 특별 강연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6자회담에 나가면, 그 자리에 북한은 없지만,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변호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면 최대한 사리를 밝혀서 북한을 변론했고, 개별정상회담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 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절제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을 대변했다는 것이다. 북한 대변인 노릇을 했음을 고백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고, 그러나, 그래도 절제하고 인내했습니다. 이 모두가 서로가 하나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조그마한 신뢰 하나라도 더 축적해가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을 대변하고 변론했다는 말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대북정책이 혼란과 실패를 거듭한 이유 하나가 바로 국론 분열이다. 대통령과 각 원내교섭단체 대표 및 원내대표로 구성된 7자 회담을 통해 이견을 좁히고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전면 교체를 요구했다. 그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교체하라.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당인 민주당과 청와대가 발끈했다. 나 원내대표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에 해당된다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곧바로 국회에 나 원내대표 징계안을 제출했다. 청와대도 나 원내대표에게 국가원수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을 모독했다고 비판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나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당들의 반응도 비난 일색이었다. 바른미래당은 나 원내대표의 정부 비판을 싸구려라고 했고, 민주평화당은 현직 대통령에게 '북한의 수석대변인' 운운하는 것을 보면,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홀로코스트적 발언 역시 한국당 일부 의원의 실수가 아닌 당의 공식입장인 듯 하다"고 논평했다. 정의당은 한국당만 아직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던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다. 가히 전두환 졸개들이라 할 만하다"고 비난했다.

노무현 정부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자신들의 대북정책은 노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다르다고 커밍아웃하는 것 같다. 아니라면, 노 전 대통령처럼 비록 여기저기로부터 비판은 받을지언정 떳떳하게 말하는 게 낫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발언에 대한 청와대와 민주당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김정은은 뭐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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