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외국인 CEO’가 두문불출하고 있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산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제임스 비모스키 부회장은 취임 6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최근 두산그룹의 움직임으로 보아 두산 일가의 ‘오너 경영체제’가 부활했으며 제임스 비모스키씨를 CEO로 영입한 것은 ‘두산 비자금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 ‘물타기’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비모스키 부회장의 활동 없는 행보는 두산 일가의 움직임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2005년 ‘형제의 난’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용성·용현·용만 등 두산가 형제들의 경영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들은 ㈜두산을 비롯해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들을 이미 장악한 상태로 결국 두산 일가는 그룹 전체의 경영을 노리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활발한 ‘두산 일가들’

문제는 비모스키 부회장 영입 과정과 두산가 형제들의 경영 복귀 움직임이 ‘대구 페놀 사 태’ 시나리오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페놀 사태’는 1991년 두산전자에서 페놀 원액이 새어 나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대구의 수돗물을 오염시킨 사건으로 두산 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져 두산그룹이 최대 경영 위기를 맞았었다.

당시 벼랑 끝에 내몰린 두산그룹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두산그룹은 동양맥주에서 근무하던 고 정수창 회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키고 두산가 형제들은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났었다. 그러나 두산가는 사태가 잠잠해지자 2년 만에 다시 그룹을 장악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국면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형제의 난이 터지자 구원투수로 비모스키 부회장을 내세워 후유증을 잠재우겠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두산 일가의 경영 복귀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오너와 CEO 간 역할 분담이 모호해지는 등 지배구조개선 로드맵이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며 “오너 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설 경우 두산의 외국인 CEO 영입은 꼭두각시 연극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페놀 사건 때처럼 CEO를 영입했다가 오너가 다시 복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모스키 부회장은 외부 활동보다 내부에서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성 극대화, 글로벌 스탠더드 확립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형제의 난이 터진 직후 속죄하는 의미로 CEO 체제를 도입해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두산 일가의 경영권 재장악은 CEO 경영에서 오너 경영으로 회귀하는 것을 뜻한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두산은 지난해 9월 이사회를 열고 두산 일가의 비자금 사태에 따른 기업지배구조 개선 작업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서던뱅크 수석부행장인 제임스 비모스키씨를 CEO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두산 측은 “외국인 CEO 영입으로 선진형 기업지배구조 구축에 한걸음 다가섰다” 며 “비모스키 부회장은 ㈜두산의 사업전략 및 경영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면서 CEO로서 ㈜두산을 대표하게 된다”고 밝혔었다.


활동 없는 ‘외국인 CEO’

비모스키 부회장은 두산그룹 최초의 외국인 CEO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최초 사례다. 사실 ㈜두산은 ‘외국인 CEO 모시기’에 난항을 거듭했었다. 당초 영입 작업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다가 지난 연말에야 비모스키 부회장을 스카우트 형식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두산 본사에서 취임식을 갖고 “첫 외국인 CEO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며 “두산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비모스키 부회장은 취임 6개월이 지났지만 여타 기업 CEO와는 달리 공개 석상에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3월 ㈜두산 주주총회까지만 해도 대표이사는 물론 정식 등기이사에도 올라있지 않았다가 그 이후 대표이사에 올랐다. 현재 두산은 상근 대표이사만 비모스키를 비롯해 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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