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법안 문제 등으로 의원들은 국회에서 대기하며 지난해 연말을 보냈다. 국회가 분주하던 작년 연말과는 달리 지금은 한산한 모습니다. 여야 대치국면이 끝난 후 의원들은 방학을 맞은 듯 해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여야가 대치할 때와는 달리 의원들의 해외 순방은 여야가 사이좋게 함께 떠났다. 의원들이 해외에 시찰을 간다고 하지만 외유성이 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 방문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번 달 중 거의 100여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해외 순방에 나선다. 이들은 해외 시찰과 출장 명목으로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의원들이 해외에 가서 선진국의 의회시스템, 정책 등을 익힌다면 그들의 의정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의원들이 해외 순방에 나서는 것에 대해 ‘남은 예산 쓰기’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어떤 의원들은 부부동반으로 해외 순방에 나서 ‘관광성 출장’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해마다 국회는 의원 외교활동비를 책정한다. 만약 이 돈을 해당 기간에 다 쓰지 못하면 다시 국고로 환수된다. “어차피 못쓰면 국고로 돌아갈 돈 쓰고 보자”는 식의 해외 출장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의원들이 해외에 나갈 때 들어가는 경비는 사비를 들여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국회예산으로 해외에 나가고 있다. 특히 17대 국회부터는 국회 예산 가운데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100억원이 증액돼 의원외교활동 등을 지원키로 했다. 이 때문에 예년보다 의원들의 출국횟수가 더 늘어났다.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나가는 것에 대해 이것을 심사하는 기구가 없을 뿐더러 대부분의 절차를 국회의원들이 심사, 결정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의원들의 해외 방문은 의원외교운영협의회에서 방문국과 방문내용 등 전반적인 계획을 결정한다. 이 후 각 상임위원회와 국회사무처의 국제협력국에서 방문의원단과 구체적인 일정 등을 정하게 된다.

상임위원회에서는 상임위 간사와 방문할 의원들이 협의를 거쳐 세부사항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이 과정에서 상급기관으로 보고를 하거나 심의를 받는 절차는 없다. 즉 의원외교운영협의회는 의장, 부의장, 통일외교통상위원장, 각 당 원내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어 세부사항 결정부터 심의까지 모두 국회의원들이 처리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회 공보실은 “예결위를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는 4~5년에 한번 정도 외국방문을 하기 때문에 형평성 고려 차원에서 의원들이 직접 결정하며 심사도 의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이번 의원들의 해외방문은 부부동반을 하는 의원들이 있어 더욱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 4일 남아공, 이집트, 영국, 케냐 등의 방문을 위해 출국한 의회운영제도 시찰단 소속의 김덕룡, 남경필, 유기준 의원은 모두 부인과 동행했다. 부인의 경비는 개인비용으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리 고운 시선은 아니다. 방문목적이 의회운영제도를 시찰하기 위한 것인데 부인까지 동행할 이유가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의원 측은 “관례상 부부동반을한 것이다”며 “해외 방문을 할 때 우리측(의원측)이 부부동반하겠다는 요청 같은 것은 없었고 의원들이 해외순방을 할 때는 관례상 부부동반을 한다”고 설명했다.참여연대 의정활동감시센터는 “의원들의 해외 순방은 문제가 안 되지만 관광성의 해외 순방은 자제해야 한다”며 “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나가기 전 계획서를 내고 귀국 후 보고서를 제대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정활동감시센터는 의원들의 외교 활동을 심사하는 독립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지난해 8월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의원 외교활동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자고 국회의장에게 요구한 바 있으나 현재 계류중이다. 당시 문 의원은 국회의장에게 법규개정 요청서를 보냈다. 문 의원은 요청서에서 “그 동안 국회의원의 외교활동 등에 대해 실질적인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인 심사를 통해 외유성 시찰을 자제하고 우수한 외교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시민단체 대표 등 외부인사 5명 정도가 참여하는 ‘의원외교활동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국회의원의 해외활동 계획서를 심사, 평가하고 부적절한 사항이 발견되면 해외활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한편 김기만 공보수석은 “올해부터 여야 의원들의 외교활동 일정 등을 매달 자료형태로 모두 공개할 것”이라며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일정과 경비 등 모든 것을 다 공개해 투명하고 검증받는 외교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공보수석은 “아직도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의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혁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이번 달부터 의원외교 활동과 경비 내역을 정식보고서를 통해 완전 공개하도록 의무화함에 따라 내실 있고 투명한 의원외교 활동 구현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