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이드 창업 블루오션 보따리상
“부산·인천·평택항에 있는 보따리상들 중엔 나이 60이 넘은 분도 많습니다. 50~60대 여성들도 많고 부부도 많아요. 저는 삶이 힘겨웠을 때 이 분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2004년 40만원으로 창업, 지금은 해외마케팅 업체의 CEO가 된 화동무역 강대훈 사장(45). 이젠 버젓한 무역회사 사장인 그는 지금도 자신을 ‘보따리 장사’ 라고 소개한다. 보따리 장사에 그만큼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보따리 장사 또는 보따리 무역이란 여행 가방으로 물건을 나르는 무역을 말한다. 기계나 용역을 쓰지 않고 직접 몸으로 들어 나를 수 있는 정도의 상품을 가방에 담아 장사를 한다. 국경을 넘어 팔고 다시 그곳의 상품을 갖고 와서 자국 또는 제3국에 판다. 처음엔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적은 양의 상품을 다루나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소호(soho) 무역상이 된다. ‘현대판 보부상’인 셈이다. 그러나 무역이라면 일반인들에겐 거리감이 느껴진다. 예비창업자들 눈에도 무역은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복잡한 무역실무를 알아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카메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보따리상 박아줌마(65)는 일본 오사카에서 매달 디지털카메라 3백여대를 수입, 용산에 뿌리는 오사카 카메라시장의 큰손이다.

그녀가 오사카와 용산을 오가면서 쓰는 일본어는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비롯해 10개 단어가 채 안 된다. 송장에 수입물건을 적고 돈을
송금하는 일 등은 무역회사나 은행에서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현대판 보부상, 이젠 디지털시대 큰 손 군림

무역을 어려운 것이려니 하여 거부감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 해외에 사는 친척으로부터 우편물을 보내고 여기서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해외우편물을 받는데 무역실무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또 국내로 들여오거나 해외로 갖고 나가는 상품 종류에 따라 관련 규정들이 다 다르다. 보따리상들은 해외 친척이 보내온 우편물을 찾듯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대응한다. 구매처에 샘플을 보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규정이나 주의점을 자연스럽게 숙지하게 되는 것.

게다가 보따리상은 물건을 처음부터 대량 취급하지 않으며 종류가 다양하다. 따라서 대개 수출입 관련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걸리는 것은 대부분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대량으로 취급해 일어나는 일이다. 이쯤이면 창업단계가 아니라 전문가 수준에 이르러 그 대처 방법도 알고 있다.

보따리상들은 보통 여객선의 3등석 항로을 이용한다. 원가절감을 위해 싼 좌석을 찾다보니 자연히 3등석으로 몰린다.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보따리상들 간에 정보교환이 이뤄진다.

부산 후쿠오카 노선의 경우 그 풍광이 이채롭다. 10대 후반에서 70대, 무학력에서 외국 박사학위를 딴 사람, 실직자, 자영업자,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은 보따리상이란 공감대 하나로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동업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모임을 통해 숙식, 아이템 정보, 현지 사정 등에 대해 가장 빠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보따리상에서 출발, 낚시찌를 만드는 회사 사장이 된 L씨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하면 된다”며 자신이 일본에 낚시찌를 수출하게 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는 2005년 부친이 일궈놓은 철도선로공사 사업체를 맡아 경영하다 날려 먹었다.

그 시름을 달래려 낚시터를 다니다가 옆의 낚시꾼한테 유난히 고기가 잘 물리는 것을 보았다. 찌에 이유가 있었다. 일본제품이라고 했다.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그는 통역을 채용,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후쿠오카의 한 낚시상회에서 찌를 사 보따리로 서울로 날랐다. 한국 낚시터를 다니며 그것을 팔아 돈을 모으고 일본에 한국 연어낚시찌를 갖다 팔기를 수차례. 이제는 아예 찌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는 벤처기업 사장이 됐다.

“보따리 장사는 노가다입니다. 그리고 노가다부터 시작해야 탄탄해집니다.”

강대훈 사장은 “잘 나가 크게 해서 망해도 다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게 보따리 장사” 라며 “보따리상을 할 생각만 있다면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 배를 타라”고 권한다. 보따리 장사는 발품을 팔아야 아이템을 찾을 수 있고, 또 배를 타고 갔다 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역실무도 배우게 된다는 것,

사실 ‘보따리장사 창업비용은 40만원’이라는 소리는 그 바닥에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보따리상들이 타는 한중 · 한일 여객화물선의 3등실 왕복운임이 40만원 안팎이어서 나오는 말이다. 보따리상이 되기 위해선 99%가 보따리를 들어주는 소위 ‘일꾼’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을 오갈 때 보따리상들의 물건 40~50kg 상당을 들어주면 8만원 정도의 품삯을 받는다. 한 달 10항 차 이상 타서 이 일꾼들이 받는 월수입은 1백50만~2백만원 수준. 한중 · 한일 화물선 페리가 1항당 1박2일 항해를 하니까 한 달 중 20일 이상 배를 타야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만 돈벌이 수단을 삼자면 강인한 정신과 체력이 아니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따리상들은 바로 이 ‘일꾼’에서 시작한다.

일꾼으로 시작하면서 통관실무를 몸으로 배우는 것. 강사장은 ‘한 번의 보따리 무역 체험은 무역학과 1년 동안의 교과 과정과 같다’고 말한다. ‘일꾼’으로서 익어지면 다음 단계는 아이템 고르기다. 해외 현지를 돌아다니며 수입할 물건을 찾는 것이다.

소품인 경우는 샘플을 갖고 오는 것이 필수다. 고참 보따리상들은 “처음엔 수입처를 확보해놓고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사줄 곳을 먼저 정해놓고 구입에 나서라는 소리다. 그래야 재고 부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창업 초기에 재고 부담이 크면 중도 하차할 확률이 매우 크다. 도매상보다는 소매상에 접근해야 이윤이 많다.

그렇게 수입부터 시작해 외국 물정은 물론 현지 바이어와의 관계가 넓어지면서 한국 제품을 갖다 파는 수출로 잇는 게 보따리상이 되기 위한 일반적 코스다. 즉 “일꾼으로 일한다. → 해외현지 아이템 물색과 샘플 구입 → 수요처 확보 → 보따리 통관” 과정을 거치는 게 비교적 안전한 보따리 창업인 것. 이랜드, 파스퇴르 우유 등 보따리상에서 출발해 국내 굴지의 회사를 일군 창업자들 역시 모두 이런 전철을 밟았다. 이후는 20년 경력을 가진 보따리상이나 두 달된 보따리상이나 동업자가 되기도 하고, 경쟁자가 되는 게 보따리 장사 세계다. 수출로 이어지면 보따리상을 넘어 수출업자로서 떠오른 단계다.


보따리상 강대훈 사장의 창업 성공기-강대훈 화동무역 사장
“보따리상은 대박의 꿈 펼칠 기회 넓어”


화동무역은 수출·입 대행, 해외시장조사, 해외진출 컨설팅 등의 업무를 하는 해외마케팅 컨설팅 업체다. 해외 현지에 나가있는 보따리 상인들의 애로 사항이나 법적 조언, 수출 지원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강대훈 사장(45)은 보따리 장사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카이스트 등에서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도 불과 2년 전만 해도 빚더미와 시행착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패배자’였다. 1997년 전 재산을 투자해 경영했던 정수기공장에 불이 났다. 또 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해 원자재 값 등 수억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선풍기, 가스난로, 에어컨 등 돈이 될 만 한 상품 유통엔 모두 손을 댔다. 그러나 발로만 뛰는 사업으론 불어가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럴 즈음 2003년 우연한 기회에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해외시장 개척요원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무역 실무를 집중 연구한 뒤 재생 타이어와 IT솔루션, 의료용 기계 등 3가지 아이템을 들고 일본 도쿄에 첫발을 디뎠다.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오가며 판매처 뚫기를 1년. 한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의 빚은 더욱 불어갔다.

귀국 뒤 그는 아이템의 적정성, 판매루트, 마진 등 패배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체류 기간 6개월 안에 제품의 성능이 확인돼 재구매까지 이어지는 제품을 확보한 게 성공의 열쇠라는 걸 알았다. 그는 이듬해인 2004년 같은 프로그램에 또 참여했다. 이번엔 가볍고 부드러운 생활 잡화류 판매에 치중했다. 비누, 세욕제, 김, 젓갈, 의류 등은 곧바로 반응이 왔다. 3개월이 지나면서 호평과 함께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겨울연가’로 인한 한류 바람을 타기 시작했던 것,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그는 대전 대덕단지 안에 화동무역을 차렸다. 해외시장 개척요원 동기들을 주축으로 무역네트워크를 구성한 것. 화동무역은 이 네트워크를 이용,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에 소개·판매하고 있다.

“보따리 상인들은 끝까지 보따리로 남아있진 않습니다. 보따리 장사를 하다 쇼핑몰을 운용하기도 하고 전문 구매 대행업자가 되기도 합니다.”

강 사장은 아이템이나 몇몇 바이어들만 믿고 무역에 뛰어드는 것을 경계한다. 몸으로 뛰는 보따리상을 하다보면 다른 직종과 달리 해외정세나 흐름에 밝아 대박의 꿈을 이룰 기회가 많음을 이점으로 들며 창업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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