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란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지도 6월 2일로서 100일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 적지 않은 국민들은 ‘참여정부’란 간데 없고 ‘혼돈정부’, ‘우왕좌왕 정부’, ‘오락가락 정부’, ‘불안정부’, ‘아마추어 정부’라고 비아냥댄다. <사진1>‘참여정부’가 이렇게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비아냥의 대상으로 단시간 내 전락된 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노 대통령을 비롯, 몇몇 장관들의 ‘오락가락’ 발언과 말뒤집기가 국민들을 혼돈케 하고 불안케 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전교조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시행방침에 반발해 연가투쟁 등 집단행동을 하려는데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5월 20일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가 전교조의 연가투쟁 협박에 굴복했는지 5월 26일 전교조측 요구를 들어주자, 노 대통령은 다음날 의외로 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권력으로 수백명을 해고하고 사법처리하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는 데서 그렇다. 또 다음날 노 대통령은 하루 전에 한 말과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전교조의 반발과 관련하여 “타협하지 말고 법대로 밀어붙이라고 지시했고, 한번 노무현의 성질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윤덕홍 교육부총리와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이미경 의원(민주당)이 가서 합의하고 왔다”며 “대통령 지시가 먹히지 않았지만 합의한 것을 뒤집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하루전 말을 또 다시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알쏭달쏭하고도 무원칙한 말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불신케 하고 불안케 할 수밖에 없다. 윤덕홍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적어도 말 뒤집기에서는 노 대통령 보다 몇 수 위에 서 있다. 그는 NEIS에 관해서도 몇 차례씩이나 말을 바꿨다. 그는 3월 6일 NEIS의 백지화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틀 후인 8일 NEIS를 유보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5월로 접어들면서 국민인권위원회의 권고안대로 3개 영역에 걸쳐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으로 되돌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5월 19일 인권위 의견을 존중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NEIS는 보완만 하면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을 또 바꿨다. 그로부터 1주일만인 5월 26일 그는 다시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해 3개 영역에 대해 NEIS 시행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데꺽 뒤집어 버렸다. 이쯤 되자 교육부 6급 이하 직원들이 참다못해 윤 장관의 번복에 대항,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특정 집단의 요구에 의한 일방적인 수용으로 결정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명하고 나선 것이다. 공무원들이 소속 부처 장관의 결정에 불복하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오죽 했으면 부하 직원들이 들고일어나야 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적어도 말의 신뢰성에 있어서 윤 장관은 6급 이하 직원들만 못하다. 그는 6급 직원으로 내려앉든지, 아니면 교육부를 떠나는 것이 교육부를 위해 공헌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뒤늦게 나마 6월 1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NEIS로 복귀하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헷갈리게 말을 하는 축에는 권기홍 노동부 장관도 끼인다. 그는 5월 27일 “불법이더라도 그들(노동자)의 주장이 정당하면 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이틀 뒤 그 말을 바꿨다. 그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사를 막론하고 엄정 대처하겠다”고 뒤집었다. 이틀 전 불법이라도 정당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던 입장을 엄히 다스리겠다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참여정부’는 지난 100일 동안 무원칙 속에 오락가락하고 우왕좌왕 흔들리며 혼돈의 극치를 보이면서 국민을 불안케 했다. 그런데 여기에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참여정부’는 무원칙과 혼돈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함없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 것이다. 노 정부는 이익집단간의 대결 속에 오락가락하는 척 하면서도 종국에 가서는 슬그머니 우측을 거부하고 좌측 집단의 손을 들어주고 만다는 좌측 편향원칙이 그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기 전까지만 해도 NEIS와 관련해서도 전교조편을 들어주었었고, 화물연대, 두산중공업, 철도분규 등에서도 노조측의 주장을 수용했다. 심지어 이적 단체인 한총련의 이적성과 수배자 해제 문제에 있어서도 한총련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참여정부’의 코드가 우왕좌왕 속에서도 좌측으로 삐딱하게 쏠려 있음을 반영한다.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오락가락하면서도 결국 우측을 거부하고 좌측만 껴안는 데서 빚어졌다. 우와 좌를 조화롭게 함께 하는 ‘참여정부’가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는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정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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