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번 8·15 경축 대사면을 단행하면서 내놓은 명분은 예외 없는 ‘국민화합’이었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모든 사면이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다거나 또는 밝히지 못할 숨은 의도가 있다는, 그래서 법치의 권위를 훼손하고라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말로 행해진 적은 없다. 언제나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단숨에 실행시켰다. 그러므로 사면정국을 빗대 일반에 희자되기를 이번에는 원님 덕에 나팔 불 사람이 얼마냐는 거였다.그렇게 해서 나타난 국민화합의 성적표가 어떠했느냐를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집권세력이 사면 때마다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화합정치의 절대적 당위성을 모두 알기는 하는 모양인데 어째 나라가 이 모양이 됐느냐는 것이다. 지역 패거리 정치로 온통 나라를 호남 소외니, 영남 소외니, 충청 푸대접이니 해서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 좌파 우파에다가 손봐야 할 보수꼴통, 개혁, 반개혁, 3대가 떵떵거린 친일자손들 등으로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상태다.이정도 되면 집권층이 부끄러워서도 상생정치를 입에 올리기 거북할 테고, 더구나 국민화합을 차마 말할 처지가 못 될 것 같다. 어디 상생이 말로 되고 화합이 시켜서 이루어질 일인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귀밑머리 풀고 만난 부부도 함께 살수 없는 법이다. 불신과 반목을 끝없이 부추기면서 입으로 화합을 말하는 모순을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나머지 미처 깨닫지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감각기능이 무딘 것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민족화합의 큰 마당이 될 것이라던 광복60주년에 펼쳐졌던 나라 그림을 보라. 경축행사가 찢어진 치맛자락같이 되어 급기야 민족의 치부를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분수령을 맞고 말았다. 해방동이가 환갑을 맞은 시점에 나라 모양은 다시 반탁, 찬탁으로 피멍이 들었던 그때 6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 그대로다. 대통령 경축사에도 미래 국가 도약을 위한 청사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로지 과거사문제로 일관해서 회의적, 소모적 굴레에 빠져들던 과거사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광복 60주년이자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올해가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던 정부였다. 정치인을 포함시켜 국민화합의 명분을 내걸었던 8·15대사면의 취지도 그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8·15자축마당은 대한민국의 균열을 무릅쓴 북한당국을 위한 한바탕 큰잔치로 덮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국민 분열과 증오현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예고하는 섬뜩함이 배어난 행사였다. 상투적 북쪽구호에 박수로 화답한 남쪽, 국가보안법은 무용지물이 돼 나뒹굴었고 헌법의 존엄성마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식으로 화합하자는 건지 뚜렷한 설명이라도 좀 들었으면 싶은데 꼽을만한 코드마저 없다.집권세력 내부조차 혼선이 일어나고 논란에 휩싸여 대통령 의중 살피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이 한편으로 안쓰러울 지경이다.그래도 국민이 희망을 아주 접지를 못하는 것이 스스로 참담해지기가 싫은 까닭이다. 이런 국민마음을 몰라라 한 체 딛고선 위정의 자리가 얼마나 덧없고 피곤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는 순간에라야 정치의 기본이 뭔가도 다시 깨닫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증오를 나타내면 많은 국민이 비수를 느껴서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던져지는 ‘국민화합’ 화두는 오만과 독선의 극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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