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견이나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일이 난항 끝에 성공했을 때 그 책임자 되는 사람은 우쭐해지기 마련이다.후한(後漢)말기 군웅들이 다투면서 삼국시대의 한축을 이루었던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요동 원정을 단행했을 때다. 이 원정이 있기까지 요동땅이 너무 멀고 자칫 적지 깊숙이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 무모함을 지적하는 부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조조는 반대주장을 일축하고 원정을 단행시켰다.마침 때가 엄동이고 눈도 오지 않아 겨울가뭄 속 행군이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보급이 끊겨 타고 온 말 수천마리를 잡아서 양식을 대신하고는 마실 물이 없어 땅을 깊게 파 겨우 물을 얻는 상황이었다. 와중에 날카로운 적의 공격으로 몇 차례나 위기를 겪어야 했었다.이런 어려움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조조의 감개는 비할 데가 없었다. 당연히 거창한 자축연이 벌어지고 종군했던 많은 장수들이 논공행상을 기다렸다. 반면 원정반대 의견을 말했던 부하들은 오금이 저려왔다. 반드시 엄한 문책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모두 긴장해있는 가운데 드디어 조조의 말씀이 떨어졌다. ‘이번 원정에 반대한 자들이 누구였더라’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반대했던 자들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런데 다음 내려지는 조조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이번 원정이 성공한 것은 다행히 운이 좋아서였다.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독단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크게 패할 뻔했다. 앞으로도 내가 독단하지 못하도록 거리낌 없는 의견을 내주기 바란다’는 조조의 말에 부하 장수들이 감격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만약 조조가 이런 때 ‘어떠냐 너희들이 반대해도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오만을 부리고 반대한 부하들을 닦달하는 인간그릇이었다면 중국 삼국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적대시하거나 주눅들게 하면 지도자는 오로지 ‘예스맨’들에 둘러싸여 시야를 좁히고 독선과 아집을 키울 수밖에 없다.어느새 자신의 아집과 독선을 느끼기조차 못하는 지도자는 ‘고독한 정의’에 아주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심이 바라는 바는 수준 낮고 철모르는 소리로 들릴법하다. 고독한 정의는 내가 곧 정의이기 때문에 기필코 내가 세상을 개혁해야 한다는 망상의 과제를 숙명으로 여기는 필연을 안게 된다. 역사 속 숱한 독재자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독재자라는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 아마 무덤 속에서도 후세의 독재평가에 매우 억울해할 것이다. 독선정치로 이룬 성과가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예는 더 뒤질 것도 없이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과거사 논쟁이 그 대표적 증좌일 것이다.박 전대통령 통치기간동안 수많은 반대자들이 박해받고 위압당한 사실을 모를 국민이 없다. 뚝심 있게 이룬 괄목할 경제성과가 갈수록 빛을 발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그는 이 시대가 마련한 과거사 법정에 끌려나와 모질고 준엄한 논죄를 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같은 진영에서조차 드러내서 반대했던 사안을 일거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는 칼 같은 결단은 왕의 시대에도 몇몇 폭정시대를 빼놓고는 거의 드물었던 일이다. 그래서 더욱 의구심이 일어난다. 폭풍 같은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죽기 살기로 밀어붙이는 까닭이 뭘까?아스팔트 위에서 투명한 정치를 외치던 지난날, 당신들은 고독해보이지 않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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