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평양을 찾아간 노무현 대통령을 말없이 뚱하고도 냉랭한 표정으로 영접했다. 제3세계의 흑인 정상 접대 수준으로 그쳤다. 그가 7년전 평양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을 열렬히 호들갑스럽게 맞이하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2000년 6월 13일 김 전대통령이 순안 공항 탑승기에서 내려 김정일에게 다가가자, 김은 서너걸음 걸어나가 오랜 친구처럼 파안대소하며 김 전대통령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끌어안기도 하였다. 그러나 7년후 노대통령의 경우는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노대통령이 평양 ‘4·25 문화회관‘광장에서 차에서 내려 김정일쪽으로 10m나 걸어가고 있었는데도, 김은 허리 위쪽 상체가 우측으로 기운채로 바라볼뿐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물론 악수도 한 손으로 했고 포옹도 없었으며 호탕한 웃음도 없었다.

7년전 김정일은 순안 공항 공식 환영 행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찰라 갑자기 김 전대통령의 차에 올라탔다. 무려 1시간 반에 걸쳐 둘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7년후 김정일은 노대통령을 4·25 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맞이한 후 홀로 떠나버렸다.

김 전대통령이 순안 공항에서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가는 길에는 60만명의 군중을 동원해 환호케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숙소로 향하는 길엔 10여만명 군중으로 줄었다.

7년전 김 전대통령을 환영하는 군중들은 간간히 “환영 환영 김대중”을 외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노대통령을 향해서는 그저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 “만세” “환영” 등의 구호 뿐이었고, “노무현”은 없었다. 김정일은 노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 때도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고, 만찬장에도 불참했다.

이처럼 김정일은 김 전대통령에 반해 노대통령을 홀대했다. 그 까닭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5억달러의 상납 여부에 있었다.

김 전대통령측은 김정일에게 평양 도착전에 5억달러를 지하 범죄조직 수법으로 몰래 불법 송금해 주었다. 4억5천만달러는 현금으로, 5000만달러는 물품으로 보내 주었다.

당시 김정일은 4억5000만달러중 일부가 덜 입금되자, 다 들어오기 전엔 회담을 열수 없다는 제스쳐로 회담 하루 전에 갑자기 연기했다. 돈이 모두 입금되지 않으면 계속 완불될 때 까지 회담을 보류하겠다는 협박이었던 것 같았다.

결국 김정일은 4억5000만달러를 모두 손에 쥔 뒤에야 김 전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김은 첫날 백화원에서 김 전대통령에게 “섭섭하지 않게 해줄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털어놓았다. 뇌물 먹은 것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김 전대통령은 김정일과 만나기 위해 검은 돈을 찔러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김정일의 버릇을 잘못 길들여 놓았고, 정상회담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후 남한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홀대를 받게 했다.

노대통령이 그 첫번째 피해자이다. 노대통령은 김정일에게 회담 댓가로 김 전대통령 처럼 뇌물을 바치지 못한것 같다. 그래서 김정일은 달러 보따리를 들고 들어오지 않은 노대통령에게는 뚱한 표정으로 덤덤히 냉대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 맛을 단단히 들인 김정일의 고약한 버릇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공 바치듯이 매번 평양으로 찾아가는 구걸 정상회담도 서울-평양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퍼주며 끌려다니고 비위맞춰주는 주종관계에서 서로 주고받는 상호주의 대등관계로 바로 서야 한다. 그것만이 김정일의 남한적화야욕을 포기케 하고 남북간의 진정한 화해·협력과 평화기반을 다지는 길 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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