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0월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기에 앞서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투표권을 박탈 하는게 아닌가 겁부터 먹었다. 그가 3년전 노인들은 ‘퇴장’할 사람들이므로 투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서슴없이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정 후보는 2004년 3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17대 총선을 앞두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인 폄훼의 막말을 내뱉었다. 그는 “미래는 20대와 30대의 무대”라며 노인들은 “어쩌면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기 때문에 60대 이상 70대는 투표안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 분들은 (투표 날에)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 후보의 노인 모독 발언에는 분명히 얄팍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노인들은 6·25 공산남침에서 살아남았고 피눈물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킨 반공·산업 역군들이라는데서 대체로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지닌다. 그들의 보수성은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북한에 퍼주며 친북좌파로 기운 열린우리당을 불신한다.

여기에 정 후보는 노인들이 투표를 하지 말아야 열린우리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투표안해도 괜찮다”는 망발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는 노인들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었다. 애지중지 키워놓은 자식이 부모가 늙었다고 해서 집에서 내쫓는 패륜을 연상케 했다.

정 후보의 노인 학대 발언은 전국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대한노인회는 성명을 내고 ‘이 나라 노인을 고려장시키고 국민의 기본권마저 박탈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우리 420만 노인은 묵과할 수 없다’고 규탄하였다. 노인들은 정 후보의 공직사퇴와 정계은퇴를 요구했다. 일부 노인들은 열린우리당 당사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도 벌였다. 노인 뿐아니라 정 후보가 ‘미래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했던 20∼30들도 그를 불효자식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정 후보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는 격분에 밀려 공식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노인 단체 대표들을 찾아가 “백배 사
죄드린다”며 용서를 빌었다. “저도 83세된 노모를 모시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노인들은 정 후보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어느 노인은 “책임 못질 일을 하고 절 한번 하면 끝나는가”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정 후보는 그 때 ‘어르신 종합복지대책’을 세우겠다고 다짐하며 물러섰다. 앞으로의 관심은 정 후보가 일단 한 정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터이므로 어떤 노인 복지정책을 표방하고 나올 것인가로 쏠린다.

정 후보는 15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가족행복시대’와 ‘노후불안 해소’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가 내건 ‘노후불안 해소’도 노인 득표를 위한 사탕발림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3년전 득표를 위해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고 천대했음을 상기할 때 그렇다.

정 후보가 득표를 위한 제스처가 아니라 진솔한 마음으로 ‘노인불안 해소’를 위해 기여할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노인에 대한
자신의 인식 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는 다음 두 대목을 반드시 유념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는 노인이 낡은 폐품이 아니고 라틴어의 말대로 “노인은 지혜다”라는 뜻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레오 톨스토이는 1899년 72세에 불멸의 명작 ‘부활’을 썼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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