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다. 다음 정권에서 옛날의 50년으로 돌아가는 보수 세력이 집권하면 나라를 전쟁의 길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좌파의 ‘잃어버린 50년, 되찾은 10년’ 행사에서 그는 90나이를 바라보는 노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강한 제스쳐를 써가면서 어느 때보다 힘찬 강연을 시도했다.

그의 주장은 “여론조사에서 진보나 중도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이 7~8할이어서 우리 기반은 아직도 살아있다”며 “그런데 우리 자체가 위축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기력을 못 내고 있는데 어떻게 대선 승리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또 “우리는 자랑스러운 10년을 만들어 냈지만 지금 잘못하면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현재 보수 세력이 큰 지지를 받고 있지만 우리가 소신을 갖고 힘을 합쳐 나가면 두려울 것이 없는 만큼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DJ는 말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조용히 있으면 존경받고 대우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세계의 방향을 거부하는 길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야당 투쟁시절 저를 지켜주고 대통령까지 시켜준 국민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대중씨는 자신의 현실정치 관여가 우리나라의 세계적 방향에 대한 이탈 및 일탈(逸脫)을 염려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국민들을 향한 보은의 심정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설파였다. 김대중씨의 이런 말을 진정한 우국충정의 발로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얼마일지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 조장한 지역정서를 볼모로 활용해 국민과의 정계은퇴 약속을 깨고 네 번째 대통령선거에 나서 당선한 사람이다.

그 여세를 몰아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물론 노벨상을 받기까지 북한과의 영수회담 등 소위 ‘햇볕정책’에 들어간 직·간접비용 모두는 한 푼 에누리 없는 국민들 몫이었다. 이렇게 DJ가 북한 정권에 ‘퍼주기’하느라 정신없을 때 그 아들들은 또 각종 뇌물 등 온갖 비릿돈 ‘퍼담기’ 하느라 정신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임기 직후 여론의 돌팔매를 견디지 못한 최측근들이 감옥행 티켓을 끊어야했고 아들 전부가 판사 앞에 길게 목을 늘이는 신세가 됐었다. 그런가 싶었는데 구속돼 실형선고 받은 아들까지 감방에서 곧 특혜 받고 나와 금세 사면복권 되는걸 보고 국민은 ‘아-역시’ 했을 것이다. 곧 이어 그 아들은 그 아버지의 “지역과 국가를 위해 좋은 봉사를 하기를 바라는 심정”에 의해 일약 국회의원 신분으로 도약해 버렸다. 김대중씨 논리대로면 이 또한 지역과 국가와 국민에 대한 그의 보답 시나리오의 일환책인지 모른다.

근래 대통령선거의 범 여권후보 단일화에 관한 재미나는 말이 있다. 현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기본 생각엔 다를 바가 없겠지만, 초조한 심정과 답답하기로 치면 DJ가 몇 십 배는 더 할 것이란 시중 루머이다.

노대통령이야 적(敵)이 많아도 말 그대로 적일 뿐 적 앞에 목을 늘어뜰여야 할 이유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적군(보수정권)이 들어설 경우 각오해야 할 문제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위기의식에 빠진 전직 대통령의 노추(老醜)가 참담스럽기 조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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