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이다. 여우의 교활함에다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는 확실히 호랑이 이상으로 더 무서워질 게 틀림없다.

옛 왕조시대 때 왕권을 등에 업은 척신(戚臣) 및 공신들 발호로 야기된 역사 폐해를 우리는 다 안다. 또한 독재 정권에서 ‘호가호위’한 소위 ‘측근 실세’로 불린 독재 첨병의 가공스러운 권력 횡포를 잊어버린 국민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민간 정부에서까지 ‘호가호위’ 세력이 존재했었다. 그 모든 게 최고 권력자의 비호 아래 가능했던 일임은 더 말할 여지가 없음이다. 그래서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 우리는 모진 고난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과 맞섰던 것이다.

오늘의 이 정도 민주화가 그저 우리 앞에 굴러 든 게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 투쟁을 지도해온 김영삼, 김대중 양김(兩金)을 기꺼이 이 나라 대통령으로 뽑았었다. 그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 두 지도자가 있었기에 30년 넘은 군사독재의 종식이 더는 늦지 않게 가능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12·19대선을 치루고 2008년이면 이 나라에 군사정권 이후의 명실상부한 문민정부 4기를 출범케 되는 셈이다. 선거 기간에 일어난 시빗거리가 이번 선거판 같이 난무했던 적이 없다. 광범위한 시빗거리를 제공한 사람은 국민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이명박 후보였다. 이명박 후보의 2007년 열두 달은 조용하게 넘어간 달이 아무 달도 없었을 정도다. 의혹에다 새 의혹이 또 터지는 바람에 전에 터진 의혹이 덮여지는 식 이었다. 시빗거리 전부가 이명박 후보의 허물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시비하는 사람을 탓할 수 없는 한나라당 처지였다.

역대 선거 같았으면 그 많은 의혹 가운데 한 두 가지만 발에 걸려도 회생 불능 상태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지지자들이 그런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받쳐줬다. 2월에 터진 비서관의 위증 폭로에 이어 위장전입, 도곡동 땅 문제, 자녀 위장취업 등 잇따르는 의혹과 시비의 홍수 속에서도 지지율 대폭하락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지자들이 끝없는 인내심을 보인 것이다.

이런 지지율 고공행진 속에 측근 참모들과의 교분을 밑천으로 캠프에 몰려든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미어터질 지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겐 목적이 뻔 할것 같다. 내년 4월 총선의 한나라당 공천이나 집권 후의 한 자리를 노리는 속내들이 매우 강할 것이다. 특히 대학 교수들의 유력 대선캠프 참여는 밑져도 본전은 찾게 돼있다. 실패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단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 말이다. 오죽했으면 현역 대학교수 쳐 놓고 유력 대선캠프에 몸담지 못한 교수는 팔불출에 속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이처럼 힘 있는 쪽에 사람이 몰리는 세상 이치가 언제나 선명하다. 어쩌면 자신감에 찬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는 벌써부터 논공행상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 걸 나무랄 생각은 미쳐 없다. 공과(功過)를 확실히 하는 것 역시 빼 놓지 못할 지도자 덕목일 테니 그 윤곽을 사전 준비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밀실거래 없이 투명하면 다행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문제는 자칫 ‘호가호위’하는 세력이 2008년도 새 정권에서 또 일어날까 몹시 두려워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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