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 이어 검찰이 노무현 집권세력에 의해 거듭 모욕과 수난을 당했다. 헌재와 검찰 권위 유린은 헌정과 법치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반민주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집권세력은 헌재나 검찰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판결하거나 기소하면 대뜸 ‘국민을 배반한 정치 검찰’ ‘손 봐야할 대상’ ‘탄핵 대상’이라며 개 패듯 한다.

헌재와 검찰 권위 유린은 솔선수범 해야 할 집권세력이 준법정신을 앞장서서 파괴하는 정치적 테러와 다름 없다. 그들이 정치인으로서 기본자질을 갖추었나를 의심케 한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월터 리프만은 민주주의 국가지도자의 기본자질을 간명하게 집약했다. “민주주의는 술취한 군중의 고함 소리와 망동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책임 있는 사람’에게 국가를 맡긴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 집권세력은 ‘책임’없이 ‘술취한 군중’ 처럼 고함을 질러대며 ‘망동’을 서슴지 않고 막간다.

지난 5일 검찰은 다각적인 수사 끝에 김경준 BBK 전 대표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공모와 관련해 혐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대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측은 사납게 검찰을 쥐어뜯고 나섰다.

정 후보측은 “정치검찰이 국민을 배반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치고 나섰는가 하면, BBK ‘수사무효’라는 피켓을 들고 검찰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까지 벌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하였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평검사에 대한 유례없는 탄핵소추안 발의이다.

집권세력의 검찰 때리기는 자신에게 불리하면 옳거나 그르거나 간에 막가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저들의 무책임한 준법정신 파괴 행태는 이미 3년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두고서도 나타난 바 있다.

2004년 5월 헌재는 국회가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헌재가 파면될뻔 했던 노 대통령을 구해준 것이다.

그러자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측은 헌재를 하늘 높이 추켜 세웠다. ‘민주주의를 수호한 헌법기관’ ‘헌재 재판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60일만인 그 해 10월 바로 그 헌재가 노대통령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순간 태도를 바꿔 헌재를 물어뜯었다. 그들은 ‘헌재는 손봐야 할 대상’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훼손했다’ ‘재판관들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할 계획’ 등 사정없이 두들겨댔다.

집권세력은 헌재의 결정을 두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민주주의를 수호한 헌법기관”이며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가도, 그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면, “손봐야 할 대상”이고 “탄핵의 대상”으로 몰아붙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집권세력이 아니라 시정잡배의 무책임한 반응과 다르지 않다.

이번 BBK수사와 관련해서도 만약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죄가 있다고 결론지었더라면 집권세력은 검찰을 “민주주의를 수호한 검찰” “경의를 표한다”고 칭찬하고 나섰을 게 뻔하다. 민주주의 집권세력이라면 헌재나 검찰의 결정을 쓰건 달건 존중해야
한다.

‘술취한 군중’처럼 고함이나 질러대서는 나라의 법질서가 바로 설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지난 10년간 그토록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과 좌절에 빠졌던것도 그들의 무책임하고도 ‘술취한 군중’ 같이 막가는 행태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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