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심청(沈淸)을 삼킨 수역을 ‘인당수(印塘水)’라고 한다.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물살이 빠른 곳이다. 3월 26일 밤 9시22분 외부의 수중 공격을 받고 천안함이 침몰한 수역도 그 근처이다. ‘심청전’은 대표적인 고대 소설로 작자와 연대 미상의 작품이다. 백령도 북쪽에는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심청각’이 있고 남쪽에는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가 있다.

효성이 지극한 어린 소녀 심청은 가난하고 눈먼 홀아버니의 눈을 뜨게 하고 여생을 편히 지내도록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을 받고 자신은 ‘인당수‘의 제물로 뛰어든다. 그러나 심청은 바다 속 사해(四海) 용왕에 의해 구출된 뒤 생환해 왕후에 오르게 된다. 심청은 그토록 보고 싶던 눈먼 아버지를 궁궐에서 만나게 되었고 기쁨에 놀란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된다.

천안함은 바로 심청이 제물로 바쳐진 ‘인당수’ 언저리에서 피격당해 순식간에 침몰되고 말았다. 104명의 승조원들 중 46명이 실종되었다. ‘인당수’에서 생환하지 못한 천안함 대원들은 심청 못지 않게 착한 군인들이었고 용맹스런 호국의 젊은이들이었다.

천안함 장병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부대 인근 지역인 경기도 화성군의 노인요양원 ‘에덴의 집’에 찾아가 낡은 지붕이랑 물받이랑 고쳐주곤 하였다. 홍명자 ‘에덴의 집’원장은 자원봉사로 나온 해군들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 등 너무 고생해 요기 할 것이라도 대접하려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군인들은 신세는 못진다”며 도시락을 직접 싸가지고 왔다고 한다. 홍 원장은 그토록 착하고 씩씩하던 천안함 젊은이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식을 5월로 앞두고 실종된 강준 중사는 5년째 매달 1만원씩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용감한 군인이면서도 천사같이 마음이 고운 대한민국의 아들이었다.

남기훈 상사는 12살, 10살, 3살 세 아들과 아내를 남긴 채 4월 2일 시신으로 인양되었다. 남 상사는 박봉으로 결혼 4주년 기념 선물을 사기에 벅차 6개월에 걸쳐 정성 들여 십자수 작품을 만들었다. 이 십자수에는 ‘결혼 4주년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나의 아내 영신에게’ 글귀를 새겨 넣었다. 그는 보다 여유로운 가족의 장래 삶을 위해 빡빡한 군 생활 속에서도 전자산업기사 등 10개의 자격증을 따며 미래를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다.

쌍끌이 저인망 어선 ‘98금양호’는 김재호 선장을 비롯해 한국인 7명과 인도네시아인 2명 등 9명의 선원을 태우고 천안함 수색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수색작업을 하던 중 저인망 그물이 찢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다시 조업구역으로 항해 하던 중 조난당했다. ‘98금양호’는 애당초 실종자 수색을 거부 하고 출어 했었더라면 변을 당할 턱이 없었다. 하지만 실종자 수색 사명감으로 비극의 사고 수역으로 들어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천안함 실종자 구조 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용감한 군인이면서도 자상하기 그지 없는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한 준위는 53세로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 소속이다. 35년 경력의 최고참으로서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름장 같이 차고 빠른 물살의 ‘인당수’바다 밑으로 계속 뛰어들었다. 젊은 후배에게 맡기고 뒤에서 지휘만 해도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흘 째 계속된 바다 밑 작업 중 의식을 잃었고 끝내 눈을 뜨지 못하였다.

‘인당수’는 착하고 용맹스러운 천안함 승조원들을 야속하게도 삼켜버렸다. 효녀 심청 처럼 살려 보내지 않았다. 살신성인 한주호 준위도 ‘98금양호’선원 9명 마저 잡아갔다. 너무도 가혹하다. 그러나 56명의 영웅들은 심청이 왕후 되었듯이 저 세상에서 왕후장상(王侯將相)되어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 주리라 믿는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조국 수호를 위해 몸 바친 그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말고 국가는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며 경건히 기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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