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 로동당 비서가 10일 10일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1997년 2월 12일 중국의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한지 13년8개월 만에 한 많은 세상을 외롭게 떠났다. 북한에 남은 황 전 비서의 부인과 두 딸 중 하나는 자살하였고 나머지 딸과 아들 그리고 손녀들은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출생한 황 전 비서는 일본 주오(中央)대 야간 전문부 법과에 입학하였다. 1949년부터 4년간 모스크바 국립대 철학연구원에서 수학하였고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학과장)을 맡았다. 14년간의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1년 동안의 최고인민회의 의장, 18년에 걸친 로동당 서기로서 주최사상연구소장, 국제담당비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황 전 비서가 북한에서 높은 자리라는 자리는 독차지했으면서도 북한을 등지게 된 동기는 김정일에 대한 경멸과 그와의 불화에 있다. 김일성은 황 전 비서를 높이 평가하였다. 황 비서의 주체사상 확립과 높은 학식을 크게 평가한데 연유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 김정일은 달랐다. 김정일은 황 전 비서가 자신을 얕잡아 보며 불신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간파하였다. 여기에 황 전 비서는 신변에 위협을 느꼈고 김정일 체제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망명을 결심하였다. 황 전 비서는 서울에서 김정일을 호되게 비한하면서도 김일성에 대해선 항시 호의적이었다. 그는 대화 중에 김정일을 구제불능의 “악동”이라고 몰아세우면서도 김일성에 대해선 늘 긍정적이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직후 나는 몇몇 인사들과 함께 그와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황 전 비서는 김정일에 대해 “머리가 좋긴 뭐가 좋습니까. 그 놈은 머리가 나쁜 대로만 발달 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김정일이 “통이 크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지만, “속 좁은 겁쟁이”라면서 “김정일은 비겁하고 잔혹한 테러나 도발하기 겁이 많아 통 큰 전쟁은 일으키지 못할 놈”이라고 하였다.

김정일 성격에 대한 황 전 비서의 판단은 옳다. 김정일은 겁이 많아 해외 여행 때 비행기를 못 탄다. 김정일은 미국을 상대로 돌발을 자행하거나 미국과 격돌할 땐 20~40여 일씩 전혀 공식 행사에 나타나지 않고 숨어버린다. 미국의 정밀 미사일 타격이 두려워서이다.

황 전 비서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진 햇볕정책이었다. 황 전 비서는 햇볕정책이 경제적으로 망해가던 김정일 정권을 살려줌으로써 도리어 남한이 김정일에게 피해를 입는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김정일 보다 더 한심하고 못된 놈들이 남한에 많아 김정일에게 남한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김정일 못지않게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신하고 혐오하였다. 그는 “한국 국민들이 아직 (김대중)정체를 바로 보지 못하는데 대해서 유감스럽게 행각한다”고 개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김 전 대통령이 “1차 (북한)방문 때는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2차 방문한다는 것을 듣고 나는 (김 대통령이) 정말 파렴치하고 사람을 속이는데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런 체질화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황 전 비서의 말대로 햇볕정책은 “천재적인 속이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비겁하고 잔혹한 겁쟁이”에게 퍼주며 굽신거린 종북정책이다. 남한이 당면한 안보상의 문제는 햇볕정책의 후유증으로 “김정일 보다 더 못된 놈들이 남한에 많다”는데 있다. “김정일 보다 더 못된 놈들”을 모두 잡아 북한으로 축출 하지 못하는 한 남한 안보는 항시 불안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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