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광부들과 축구 경기를 벌여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집중조명)를 받았다. 그는 12일 전인 10월 13일 산호세 광산에 매몰되었던 33명의 광부들이 구출되었을 때, 그들에게 자신을 포함한 구조팀과 축구시합을 벌이자고 약속했었다. 광부들과 축구하는 그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리더십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8월 5일 70만t의 암석 아래 눌린 채 지상과 연락이 닿기 까지 17일 동안 암흑 속에 갇힌 광부들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절망속에서도 낙천적인 지도자가 거기에 있었다. 매몰 당시 작업조장이던 54세의 루이스 우르수아 씨가 그 주인공이다. 우르수아는 매몰 공간을 작업, 취침, 위생 세 구역으로 나눴고, 광부들을 기록, 간호, 오락반으로 분담케 했다. 그의 지도력은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살아 돌아 올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생환 뒤 언론이 격찬하자, “뭐 광부의 삶이 원래 그렇지요”라며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8개월 전인 2월 27일 칠레는 지진 규모 8.8의 강진을 만났다. 1개월 반 전의 아이티 지진 7.0 보다 훨신 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칠레 국민들은 아이티와는 달리 허둥대지 않았고 침착하게 대처였다. 각기 지질과 건물 구조는 달랐지만, 칠레 사망자는 300여명으로 아이티 30만의 100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아이티의 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하자 겁먹고 도망쳤다가 만 하루가 지난 뒤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칠레의 경우 당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진 발생 40분 후 TV 생방송에 나와 수습책을 지시했다.

바첼레트 전 대통령은 여자이다. 그녀는 아빠가 각기 다른 세 딸을 키우는 싱글 맘(엄마)이고 산부인과 의사이다. 대통령 건물은 높은 담장도 없고 문이 활짝 열려있다. 오래된 주조 공장을 개조한 건물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는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저에서 대통령 집무실로 출퇴근 하였다.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소탈하며 서민적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군 장군이었으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시절 고문으로 숨졌고 어머니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석방된 뒤 그녀와 어머니는 오스트렐리아로 망명했다. 그녀는 피노체트 정권에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집권한 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 처럼 “과거사 청산”이니 “역사 바로세우기”니 하며 국민들을 갈등 대결케 하지 않았다. 중도좌파로서 그녀는 취임 초 어려움도 겪었지만 여론지지 80%대를 유지한 인기 대통령이었다. 그녀는 브라질 방문 때 홀로 아침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다 “대통령 답지 않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나홀로 수영은 대통령을 백성에게 근접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후임인 피녜라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 유학해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고 늘 파안대소하며 서민적이다. 그는 산호세 광산 매몰 현장에 수시로 나와 이웃 집 친구 처럼 광부 친인척들과 함께 섞여 지냈고 33인의 광부들과 축구시합을 약속한 대로 실행하였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경직된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행차할 때 마다 수많은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에 둘러싸인다. 신변안전을 핑계 삼은 권위주의 시절의 유산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한다면서도 거동할 땐 삼엄한 경호속에 “임금님 행차”같은 분위기를 띄운다. “친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이 대통령은 “친서민”하려면, 광부들과 어울려 축구경기를 벌이고 보좌진 없이 인터뷰하며 국민과 자주 섞이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신변경호도 유의해야겠지만, 말로만 하는 “친서민”이 아니라 몸소 체현(體現)하는 “친서민” 대통령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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