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내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권 전쟁이 볼만하다.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2006 지방선거를 향해 가고 있으나, 멀찌감치 대선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 먼저 기선제압에 성공한 쪽은 박 대표다.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하는 반박세력의 압력을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못 박은데 이어 최근엔 지방선거 전략공천, 국민참여경선 등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꿰차기 위한 사전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이 시장이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기 서울시장 등 이 시장의 우군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교감 작업이 한창이다.

‘박근혜-이명박’ 후보 단일화는 있을 수 없다는 그의 대권 논리에서도 결단이 묻어난다. 오랜만에 대권 양강구도를 맞고 있는 한나라당, 그 속에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두뇌 게임을 들여다봤다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 때마다 상위에 랭크되는 이름은 고건 전국무총리,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대표다. 이들 야권 후보들의 지지도만 합쳐도 60%가 넘는다. 그 중 자당 소속 후보가 두 명이나 끼여있다는 것은 두 번이나 대선에 패한 한나라당에 정권창출의 기대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중앙당 공략 원천봉쇄

그러나 후보 당사자들의 처지는 다르다. 상대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특히 지난 10월26일 국회의원 재선거 4대0 승리가 박 대표의 공으로 돌아간 이후, 양측의 신경전은 점입가경이다. 먼저 내년 지방선거 이후 당대표직을 내놓는다며 반박세력의 ‘당권-대권분리’ 요구를 물리친 박 대표는 내친김에 대선후보 경선까지 분위기를 몰아갈 태세다. 자당 소속이지만 당 조직력에서 박 대표에 밀리고 있는 이 시장의 중앙당 공략을 원천봉쇄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난 10일 당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혁신안.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 구성’과 관련 혁신안의 최종안이 정치권의 관심대상이었던 게 사실이다. 국민적 인기까지 담보한 양강구도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빅매치’임에 틀림없다. 여차하면 본선까지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지난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의 ‘흥행’과 이로 인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본 딴 벤치마킹의 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선의 틀을 어떻게 짜느냐의 문제. 결과는 박 대표를 위한 혁신안으로 최종 결정됐다는 반박세력측의 주장이다.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 구성에 관한 애초 원안은 기존의 전당대회대의원 20%, 당원선거인단 30%, 일반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 그런데 박 대표 및 지도부는 혁신원안을 수정, 당원선거인단을 ‘책임당원’으로 하고 일반국민선거인단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는다는 당규를 만들 계획임을 밝힌 것이다. 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반박세력측에선 일반선거인단 30%도 책임당원, 일반당원, 일반국민으로 구성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견해다. ‘책임당원’을 많이 모집한 후보가 대선후보 경선에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일반국민선거인단에 대한 규정이 없다면 선거인단에 탈락한 당원들이 일반국민선거인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4만 박사모 책임당원화?

혁신원안에 메스를 들이댄 의도는 박 대표를 대선후보 경선에 무사통과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박 대표는 이미 ‘박사모’라는 4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이들 박사모는 ‘책임당원제’ 배가운동을 벌여봤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당내 일각에선 혁신안과 박사모의 움직임이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이번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 구성의 ‘조건’이 2006 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후보와 박 대표의 윈-윈전략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이자 차기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한 홍준표 의원이 극렬 반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박사모 회원들이 책임당원에 대거 가입한다면 ‘박심(朴心)’을 등에 업은 후보가 차기 서울시장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 의원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혁신위 취지에 배치되는 조항들을 삽입해 통탄스럽다”며 “책임당원을 중심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함으로써 당과 국민이 5:5에서 8:2로 바뀌어 폐쇄적인 당구조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난했다.특히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전략공천 30% 할당’ 역시 박 대표의 위상 강화는 물론 그의 대선후보 경선 승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략공천은 호남지역 등 소외지역을 배려한 측면이 강하지만 수도권 및 영남권도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라 하더라도 ‘낙점’에 밀리게 된다. 지방선거는 경선의 전초전이다. 박 대표와 지방선거 후보와의 윈-윈전략은 여기서도 통한다. 박 대표의 최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친이명박계 인사들이 혁신안에 반발하면서도 긴장하는 이유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홍 의원 역시 이 시장의 측근의원으로 분류된다. 반박세력에선 당권을 장악한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된 혁신안을 두고 ‘무늬만 국민경선’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운영위를 통과한 혁신안의 궤도 수정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차기 서울시장 대리전 성격

그렇다고 이 시장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박 대표와 이 시장의 공식 대리전은 내년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강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한 이 시장의 뒤를 이을 차기 서울시장과 이 시장의 윈-윈전략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또한 최근엔 이 시장의 인기도가 높아지면서 박 대표의 영원한 우군으로 분류되던 영남권 현역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현상은 주목할 대목이다. 그러나 지방선거 경선의 핵심은 가장 많은 유권자를 보유하고 있는 ‘공화국’ 서울의 표심이다.한나라당 한 핵심당직자 역시 “차기 서울시장후보 경선은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바로 이 시장의 오랜 정치적 동지라 할 수 있는 홍 의원과 친박세력으로 알려진 맹형규 의원이 그 대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박 대표는 ‘전략공천’ 카드를 내밀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근혜 체제하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맹 의원의 출사표는 당심(黨心), 곧 박심으로 읽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친이명박측에선 여론조사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홍 의원을 민심(民心)이라는 키워드로 정리, 홍 의원을 물밑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한편, ‘민심 강조’는 이 시장의 ‘대선전략’이 배어나온다는 분석이다.

청계천복원사업 외에도 이 시장은 서울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시내 낙후지역을 계획적으로 개발한다는 취지에서 ‘뉴타운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갖가지 논란과 비판, 그리고 주민반발 및 분열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똑같은 수순을 밟았던 청계천 사업이 그랬듯 완공 이후엔 이 시장의 국민적 인기도에 가속페달을 달아줄 것이란 관측이다. 사실 지난 10월1일 청계천 완공 이후 이 시장은 접전을 벌이던 박 대표를 가볍게 제쳤으며, 현재는 차기 대통령감 부동의 1위 고 전총리를 무서운 속도로 추격, 위협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 2006 지방선거 ‘전략공천 30%’지자체장! 불붙은 CEO 영입론

지난 10일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한나라당 혁신안에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 ‘전략공천 30%’ 할당이 포함, 당규에 반영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내년 2006 지방선거를 겨냥한 ‘CEO 영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CEO 출신 인사들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지난 17대 총선에서부터 증폭됐다. 비례대표 의원수가 증가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 및 이들 CEO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영입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특히 ‘행정에 경영을 접목시킨다’며 정치권에 편입한 CEO 출신 선배 지자체장들의 주가 상승도 점진적으로 정치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CEO 출신으로 광역단체장직을 무사히 수행한 이들에게는 ‘차기 대선주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CEO 출신으로 경남지사를 지낸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 현대건설 CEO를 지낸 이명박 서울시장이 그 선례다. 특히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CEO 출신 인사들에 대한 관심은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감지된다. 삼성전자 CEO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거취 문제에 대한 설왕설래다. 어쨌든, 한나라당 내부에서 CEO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영입작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차기 대구시장 주변에서다. 대구시 당소속 의원 10여 명은 외부인사 중 경쟁력 있는 인물을 적극 영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편, 진 장관이 여권 후보로서 차기 서울시장 출마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가운데, 한나라당 일각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정치권 인사가 아닌 CEO 출신 인사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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