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사건들과 관련, 검찰의 이미지가 추락할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훈훈한 감동을 안겨준 검사가 있어 화제다. 수십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절도로 또다시 수감될 상황에 처한 70대 노인에게 선처를 베푼 서울중앙지검 형사제2부 김덕길(41) 주임검사가 그 주인공. 11월 29일 중앙지검에서 김검사를 만났다.김검사에 따르면 피의자 최모(71)씨는 24세때 특수절도죄로 징역 6개월을 복역한 것을 시작으로 올 8월 14일 광복절특사로 출소하기까지 근 3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러나 출소한지 100일도 되지 않은 11월 4일, 그는 서울 중구 L백화점 매장에서 열쇠고리 1점, 라이터 1점, 목걸이 1점 등 7만4,000원 상당을 절취한 혐의로 또다시 붙잡혔다.김검사에 따르면 절도로 2회 이상 실형을 받은 최씨는 그 집행이 종료된 후 3년 이내에 다시 절도를 저질렀으므로, 본건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6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 법원에서 피의자의 사정을 감안하여 형량경감을 해준다 하더라도 최소 징역 3년이상의 실형 선고가 불가피한 상태였다.

그러나 김검사는 예외적으로 최씨를 법무부 인가 보호기관인 담안선교회에 위탁, 석방후 기소유예 처분하는 선처를 베풀었다. 그 이유에 대해 김검사의 대답은 명쾌했다.“이번 결정에는 자체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했던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저는 ‘사회 위험성’의 여부, 즉 최씨의 범행수법이 위험하지 않다는 점, 습벽으로 인한 행위였다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6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받게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경우에는 엄벌보다 교정의 기회를 부여함이 적절하다고 판단한거죠.”또 이번 김검사의 판단에는 최씨가 고령인데다가 오랜 수감생활로 인해 가족과 연락도 두절됐다는 점, 육체적으로 심약할 뿐 아니라 건강상태도 안좋다는 점도 작용했다. 김검사는 “얼핏보기에도 건강이 안좋았어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세게 부딪히면 쓰러질만큼 약했구요. 오죽하면 제가 농담삼아 ‘영감님, 절도하다 걸리면 그냥 잡히세요. 도망가다 넘어지기라도하면 그 몸이 남아나겠습니까?’라고 했겠어요?”라며 웃었다.작년 2월 서울중앙지검에 부임한 김검사의 선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검사는 작년 10월, 노동일을 하면서 위암으로 투병중인 부친을 부양하고 있는 20대가 결혼을 앞두고 저지른 경미한 범행에 대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한 바 있다. 또 70대 모친을 모시고 사는 50대 남성이 습벽으로 저지른 단순절도건, 군입대를 앞둔 대학생의 절취건에 대해 본인의 반성여부 및 여러 가지 정황을 참작, 기소유예 처분하는 등 여지껏 4차례에 걸쳐 ‘선처’를 베풀었다.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업무를 보는 김검사는 “검사라는 직업이 외부에서 보듯 그리 화려한 직업은 아니다. 요즘같은 때는 참 힘들다”며 “특히 검사의 능력이나 권한을 넘어서는 것들을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진이 다 빠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양측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에서 검사가 받게 되는 ‘불신감’은 심적으로 적잖은 스트레스가 된다”고 털어놨다.

김검사는 이번 선처건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건을 맡다보면 때론 무조건적인 법적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재범방지 및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장치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김검사의 선처는 ‘범죄자에 대하여는 피도 눈물도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수사기관이나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적절한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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