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그의 이름을 빼놓고 더 이상 한국영화를 논할 수 없다. 연극무대에서 다진 탄탄한 연기실력을 바탕으로 <박하사탕>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보이며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스타로 등장했다. <오아시스>, <공공의 적>, <광복절 특사>, <실미도>에 이르기까지 이제 설경구를 빼놓고 한국영화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6월 한국갤럽이 창사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란 주제로 특별 기획한 여론 조사에서 설경구는 영화배우 부문에서 안성기, 장동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또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영화로는 그가 주연한 <실미도>가 꼽혔다. 연기 잘하는 배우, 흥행 배우, 한국의 대표적인 배우로 자리잡은 설경구의 연기인생을 들여다보았다.

우에서 영화계 흥행보증수표로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배우 3인방으로 불리는 설경구. 그의 연기인생은 연극무대에서 시작됐다. 당초 방송사 PD를 꿈꾸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던 설경구는 졸업과 함께 극단 학전에 몸담았다. 연극포스터 붙이는 허드레일부터 시작한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무대에 얼굴을 알린 건 <지하철 1호선>이다. 김민기씨가 연출을 맡았던 <지하철 1호선>에서 설경구는 ‘철수’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연극무대를 전전하던 그가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디딘 작품은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다.

1980년 5월 항쟁을 정면으로 담은 최초의 한국 영화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는 지금은 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정현이 당시 주인공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문성근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이정현은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추상미와 함께 ‘우리들’로 출연했지만, 그가 출연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독히 영화운이 없다는 평가까지 들으며 단역을 벗어나지 못하던 설경구에게 기회를 가져다 준 영화는 다름아닌 <처녀들의 저녁식사>다. 이 영화에서 그는 진희경을 유혹하는 젊은 만화가로 등장, 관객들과 충무로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영화인생을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창동과의 만남

설경구의 영화인생에서 가장 큰 만남은 누구일까? 아마도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이자, 영화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이창동 감독이 아닐까?초록물고기로 성공적으로 감독데뷔를 한 이창동 감독과 연극계와 영화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탄탄한 연기력을 다진 설경구와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를 더욱 빛나게 했다. 두 사람의 첫 작품이 바로 <박하사탕>이다. 1999년 이스트필름(East Film)과 일본 NHK가 공동으로 제작한 박하사탕은 이창동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겸하고 설경구는 문소리, 김여진 등과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주인공 김영호역을 맡아 순수했던 한 청년이 어두웠던 시대상황에서 5·18 광주항쟁에 투입돼 여고생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운동권 대학생들을 잡고 고문하는 고문형사로 변해가는 모습을 열연했다. 영화속에서 자살을 결심하고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설경구(영화속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모습, 그의 살아움직이는 눈빛과 감정연기는 관객들에게 묘한 카리스마를 선사하며 큰 여운을 남겼다. 특히 이 영화로 설경구는 신인남우상(2000년)과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2000년)을 수상하며 일약 대중적인 인물로 급부상했다.

영화 <오아시스>를 통한 이창동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도 커다란 성공이었다. 2002년 제작된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과자 청년 홍종두 역을 맡아 뇌성마비 장애인(문소리)과의 독특한 사랑의 모습을 선보였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할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대한민국 대표배우다운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또 한번의 감동을 선사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설경구는 이제 연기파 배우뿐만 아니라 흥행을 몰고 오는 배우로도 통한다. 출연작품 대부분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 이같은 그의 인기비결은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에서 나온다. 특히 다양한 연기변신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천의 얼굴을 지닌 배우’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2002년에 제작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는 깡패 같은 형사 역을 맡아 열연, 2002년 대종상과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또 영화 <광복절 특사>에선 <공공의 적>, <오아시스>에서 보였던 연기와는 달리 코믹연기에 도전했다. 차승원, 송윤아 등과 함께 열연한 이 영화는 설경구가 애인(송윤아)의 배신을 막기위해 탈옥을 위해 6년간 땅굴을 팠던 차승원을 따라 감옥을 탈출했다가 뒤늦게 광복절 특사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가는 해프닝을 그렸다. 설경구의 코믹연기도전은 대성공이었다. 전국 300만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대박을 터뜨렸고, 자신의 연기변신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그러나 무엇보다 설경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영화가 바로 2003년 최고의 흥행작 <실미도>다. 박하사탕이 그를 최고의 배우로 떠오르게 했다면 실미도는 그가 왜 최고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영화다. <실미도>는 설경구 특유의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돋보이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관객 1천만명을 동원해 흥행대박을 터뜨린 것은 물론 일본의 극장가까지 진출, 큰 호응을 얻고 있어 설경구를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설경구는 영화 <역도산>을 촬영하며 또 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무려 20kg이나 체중을 불릴 정도로 영화에 모든 것을 담았다는 설경구. 그가 이번엔 어떤 매력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지 자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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