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가던 1997년,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김선우는 박찬호보다 많은 계약금과 기대를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스무살 청년은 당시 한국인으로는 최고액인 125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김선우는 이후 8년 동안 한 번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뛴 적이 없다. 재능이 부족해서 그랬다면 한탄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선우의 피칭은 예나 지금이나 힘차고 싱싱하지만 행운은 늘 그를 비켜가기만 했다.김선우는 올시즌 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조건부 방출됐고, 8월에는 아예 웨이버 공시(방출)까지 되는 수모를 겪었다. 폐품 취급을 당하고 몇 달을 보낸 김선우는 어떤 모습일까. 김선우는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9월25일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에서 완봉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투수들의 무덤서 꽃피다

우선 쿠어스필드에서 따낸 완봉승의 의미부터 따져보자. 해발 1마일(1,600m)에 자리잡은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는 공기저항이 작은 탓에 타자들이 때린 타구가 다른 구장에서보다 10m 정도 더 날아간다. 그야말로 타자에겐 천국이요, 투수에겐 지옥이다. 커브의 달인이라던 대릴 카일과 싱커가 돋보이던 마이크 햄튼 등 특급 투수들도 콜로라도유니폼을 입은 뒤 야구 인생을 망쳤다.김선우도 8월 콜로라도로 이적한 뒤 쿠어스필드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다.

그는 땅볼을 유도하는 투수가 아니라 포심패스트볼을 주무기로 플라이 아웃을 많이 잡아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구장의 특수성을 더욱 크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9월25일, 김선우는 쿠어스필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강타선을 맞아 생애 최고의 피칭을 했다. 9이닝 동안 안타3개,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무실점. 데뷔 첫 완봉승이자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박찬호(2000, 2001년) 이후 두 번째로 영광을 이뤄냈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빅뉴스였다. 김선우의 쿠어스필드 완봉승은 홈-원정팀을 통틀어 2001년 10월1일 존 톰슨(당시 콜로라도) 이후 4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3안타 완봉승은 95년 쿠어스필드 개장 이후 콜로라도 투수로는 최소 피안타 기록이다.

김선우는 ‘투수들의 무덤’을 제 힘으로 파헤칠 만한 힘을 증명했다. 김선우는 이날 현역 최고 타자인 배리 본즈와의 3차례 승부에서 씩씩하게 달려들어 모두 범타로 잡아냈다. 최고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가 꿈틀거리며 포수 미트에 꽂혔고, 변화구도 얄미울 만큼 잘 컨트롤됐다. 물론 이날 피칭만으로 김선우가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가 됐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현 시점에서 보더라도 김선우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선우는 콜로라도 이적 후 5승 무패, 방어율 3.35로 수준급의 기록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약체 팀이 버린 김선우가 이런 성적을 거두리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어둡고 긴 8년의 터널

탁월한 재질에 성실성까지 갖춘 김선우는 왜 이제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 걸까. 질곡 있는 8년 동안의 미국 생활에는 운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따르지 않았다. 김선우는 보스턴 입단 이후 4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수련한 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호화군단’ 보스턴에서 김선우가 안정적으로 뛸 자리는 없었다. 보스턴은 김선우 같은 유망주를 육성해 키워내는 팜 시스템에는 애초부터 무관심했고, 다른 구단에서 스타를 사들이는 쇼핑에만 몰두했다. 김선우는 마이너리그 시절 일본인 투수 오카 도모가즈와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장외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결국 김선우는 2002년 8월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다. 많은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됐던 그곳에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몬트리올의 프랭크 로빈슨 감독은 메이저리그 감독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선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단적이고 불합리적인 지휘 스타일로 선수들의 원망을 사곤 했다. 불행하게도 김선우가 폭정의 희생양이었다. 로빈슨 감독은 김선우의 피칭이 공격적이지 못하다며 “저게 메이저리그 선수냐”고 공개적으로 혹평했다. 김선우가 잘 던져도 외면하기 일쑤였고, 부진하다 싶으면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몬트리올은 연고지를 워싱턴으로 옮기며 팀을 재정비했지만, 로빈슨 감독은 유임시켰다. 만년 유망주인 김선우가 감독과의 불화를 더 이상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올시즌이 시작되기 전 김선우는 조건부 방출 통보를 받았고,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김선우는 당시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본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으니 동정 받을 이유가 없다. 부귀영화를 바랐다면 미국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애써 웃었다.김선우는 워싱턴 마운드가 무너진 틈을 타 5월에 빅리그로 재입성했지만 8월에 아예 방출됐다. 콜로라도는 버려진 김선우를 거저 줍다시피 했다. 김선우에게 가장 큰 불행은 병역 문제다. 김선우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가대표팀에 큰 공헌을 하고도 국제대회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아 아직까지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 다른 메이저리거들이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모두 병역 특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억울한 일. 특히 국가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실력이 아닌 야구계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탈락한 터라 아쉬움은 더 크다.

‘쨍’하고 해 뜰까?

김선우는 콜로라도로 이적한 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편하다”며 한동안 잃어버렸던 웃음을 다시 보였다.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보스턴, 막무가내 감독이 괴롭혔던 몬트리올과 달리 콜로라도는 김선우에게 기회이자 축복의 팀이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다. 김선우는 아직 콜로라도 선발 투수로 공인된 것이 아니기에 우선 로테이션에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이적 후 호투에 이어 완봉승까지 따냈으니 김선우에 대한 테스트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구위를 내년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콜로라도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그 동안 김선우의 투구를 보며 “아주 좋은 공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커맨드(command·경기 지배력)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런대로 잘 던지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하고 좋은 공을 꾸준히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선우가 쿠어스필드에서 완봉승를 따내자 허들 감독은 “김선우는 우리가 바라던 피칭을 했다”고 극찬했다. 허들 감독의 머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일단 성공한 것이다. 콜로라도는 내년 시즌 제프 프랜시스, 애런 쿡, 제이슨 제닝스 등 3명의 선발을 내부적으로 확정했다. 남은 두 자리를 놓고 김선우, 김병현, 자크 데이와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이 경쟁하는 형국. 현재로서는 김선우가 4선발을 꿰찰 가능성이 가장 크다.콜로라도 댄 오다우드 단장도 “김선우가 내년에도 선발 경쟁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응원했다. 이 말은 내년에 김선우와 계약해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선우는 미국땅을 밟은 이후 처음으로 감독과 구단의 지지를 확인했다.

나머지는 김선우 스스로가 풀어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선발투수로서의 안정감이다. 김선우는 좋을 때와 나쁠 때의 편차가 너무 크다.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김선우는 ‘가끔씩 잘 던지는 투수’ 이상으로 평가 받기 어렵다. 선발 투수의 최고 덕목은 부상과 기복이 심한 시즌을 꾸려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김선우는 경기 중 다리나 팔에 쥐가 나는 바람에 가끔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곤 했다. 이는 김선우의 장점이자 단점을 잘 나타내준다. 김선우는 어릴 때부터 잔기교를 부리며 던지지 않고 강한 어깨를 믿고 힘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 유연하지 못한 몸으로 폭발시키듯 근육을 쓰니 여간해서는 팔, 다리 근육이 견뎌내기 힘들었다. 김선우가 근육 마비를 호소하거나 긴 이닝을 던지지 못하는 것은 그의 피칭메커니즘과 관계가 깊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몸에 힘을 빼고 던지는 요령을 터득하거나, 근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김선우는 이미 변신하고 있다. 허들 감독이 김선우의 한계 투구수를 100개로 정했기 때문에 그는 지난달 초까지 승리투수 요건인 5이닝을 채우기도 버거워 했다.김선우가 쿠어스필드 완봉승을 따낼 때의 투구수는 불과 101개. 주도권을 쥐고 타자들과 승부하면 적은 투구수로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최근 김선우는 조금씩 피칭리듬을 조절하는 등 선발 투수로서 제법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런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김선우의 콜로라도행은 숱한 불행끝에 찾아온 첫 번째 행운이었다. 그리고 김선우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 기회를 꽉 움켜잡았다. 어둡고 습한 그늘에서 지내온 지난 8년. 서니(Sunny)라는 애칭을 가진 김선우는 오랜 시련 끝에 마침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