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출신이지만 한나라당 꼬리표를 달고 비주류로 살아온 비운의 정치인-바로 3선의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다. ‘독수리 5형제’중 유일하게 현역 배지를 달고 생존해왔지만 영남에서 태어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멍에로 2번씩이나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에서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런 김 의원이 지난 10월 13일 ‘생뚱 맞지만’ ‘사연이 있는’ 자필 편지를 동료 의원 86명에게 보냈다. 내용은 “한나라당 출신 낙인과 멍에를 벗겨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이를 통해 ‘무거운 멍에’에서 벗어나서 일까. 그후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나선 김 의원은 청목회 사건과 관련, “나부터 잡아가라”며 ‘대중연설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해 검찰에게 일성을 날렸다. 박수로 화답한 동료 의원들은 “김부겸은 죽지 않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때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과 함께 ‘차세대 리더’로 인정받았던 김 의원의 굴곡 짙은 인생사를 더듬어봤다.

2010년 10월 10일 국회 본회의장. 긴급 현안질의에 나선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얼굴에 비장감이 쌓여 있었다. 바야흐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이하 청목회)의 국회의원 로비사건으로 국회가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나부터 잡아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김 의원이 청목회 사건과 무관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양심을 걸고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청원경찰법)이 발의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당연히 공동발의자로 서명했을 것”이라며 “나부터 잡아가라”고 검찰을 겨냥했다. 이어 김 의원은 “공동 발의자로 서명하고 청원경찰들이 후원회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왔다면 겸허히 그러나 당당히 받았을 것”이라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으로 주인이 머슴한테 일을 열심히 하라고 주는 새경을 왜 안받겠느냐”라고 언성을 높였다.

또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어려운 처지를 개선하기위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대변자를 찾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아니냐”라며 “그들은 익명으로 내도 될 것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하고 명단까지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부 전원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다. 검찰이 정치를 그것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검찰 수사를 성토했다.


“역시 김부겸이야” 여야 동료 ‘찬사’

김 의원의 현안 질의가 끝나자 여야를 막론하고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잘했어”, “잘했어”라는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원고도 보지 않고 읽은 김 의원의 연설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고 이날 긴급현안 질의를 한 국회의원 중에서 단연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정치 인생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2003년 7월 이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이날의 찬사로 보상받을 수 없는 비주류 그 자체였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은 2003년 7월이었다. 김 의원과 함께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그리고 김영춘 의원 등 5명의 ‘개혁파’가 한나라당의 퇴행적 모습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주류인 호남계와 노무현을 당선시킨 범 개혁세력이 당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당 분당을 촉진했던 ‘머리채 사건’(여성 당직자가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붙잡은 사건), ‘난닝구 사건’(당무회의장에서 한 당직자가 속옷 차림으로 난동을 부린 사건) 등이 그때 일어났다. 당 밖에선 신생정당인 개혁당이 유시민, 김원웅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결집하고 있었다. 여권발 정계개편 방아쇠를 당긴 게 ‘독수리 5형제’ 탈당 사건이었던 셈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을 주축으로 한 탈당파들과 함께 총선 5개월 앞두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40여 명의 초미니 여당을 꾸렸다.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152석이라는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김 의원에겐 ‘한나라당 출신’이라 주홍글씨가 그때부터 따라다니고 있었다.

김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1년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다. 하지만 1995년 민주당 분당 당시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키면서 정치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조순 두 후보가 신한국당과 민주당 합당을 결정하면서 한나라당 창당 멤버가 됐기 때문이다. 그해 DJ는 JP와 연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러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법안을 놓고 한나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고 이것이 이른바 ‘독수리 5형제’ 동반 탈당의 계기가 됐다.


독수리 5형제중 유일하게 현역의원

현재 함께 탈당한 동료 의원중 김 의원을 제외한 다른 4인방은 하나 둘씩 현실정치에서 멀어져 갔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당 의장까지 한 당을 탈당한 이후 대중들로부터 잊혀졌다. 안 전 의원은 2008년 1월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조용히 살고 있다. 이우재 전 의원은 17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돼 한국 마사회 회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나마 김영춘 전 의원만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손학규 대표가 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면서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최고 역시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내리자 2007년 4월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그해 대선에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재차 탈당하는 곡절을 겪었다. ‘독수리 5형제’중 의원 배지를 달고 살아남은 유일한 인사가 김부겸 의원 혼자인 셈이다.

그러나 김 의원의 비주류 인생은 2007년 민주당 경선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대표 측의 좌장 역할을 하면서 계속됐다. 김 의원이 첫 아픔은 2009년 5월 원내 대표 경선이었다.

3선의 국회의원으로 원내 사령탑에 도전했지만 정동영계이자 전북출신인 이강래 후보에게 46대 28표라는 적잖은 표 차이로 져 낙마했다. 당시 1차 투표에서 떨어진 후보는 박지원 현 원내대표였다. 그리고 올 5월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그만 두는 배수진을 치면서 원내대표에 재도전했지만 1차 투표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결선투표는 박지원 후보와 강봉균 후보간에 치러져 구 민주계가 지지한 박 후보가 당선됐다. 김 의원으로서는 3선으로서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고비마다 발목이 잡힌 셈이다.

그러나 김 의원의 아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0월 3일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적극 지지한 손 후보가 당대표가 돼 ‘비주류’ 인생이 끝나는 줄로 알았다. 실제로 당선 축하자리에서 김 의원은 “처음으로 선거에서 이겼다”며 “이제는 나도 주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당연히 김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손 대표는 ‘호남몫’이라는 명분으로 3선의 이낙연 의원을 그 자리에 앉히면서 재차 당직 진출에 실패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당직 인선 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영춘 전 의원이 되자 김 의원의 당직 임명은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인사들인 손학규, 김영춘, 김부겸 3인방이 각각 당 대표, 지명직 최고, 사무총장까지 독식했다는 구민주계의 비판이 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김 의원은 동료 의원에게 장문의 친필 편지를 쓰게 됐다. 김 의원은 편지를 통해 “신임 손학규 당 대표의 당직 인사와 관련해 하마평이 오르내린 바가 있다”며 “그러나 결과가 발표되자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제가 ‘영남 출신’에 ‘한나라당 출신’이라 배제되었다고 분석해 제 심정은 참담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왜 영남 출신, 한나라당 출신 때문이라는 꼬리표가 붙느냐.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이 동시에 영남 출신이면 큰일 나는 당이냐?”고 반문했다.


김부겸식 정치실험 이제부터 시작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치 인생을 언급하며 “정치사의 큰 물결이 요동침에 따라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에 몸 담았다는 것이 원죄라면 언제든지 그 값을 달게 치르겠다”며 “부디 외면하지만 말고 언젠가는 ‘한나라당 출신’이란 낙인과 멍에를 제 어깨에서 좀 벗겨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에 같은 당 동료인 장세환 의원은 ‘김부겸을 위한 변명’이라는 답신을 통해 “독수리 5형제라고 운운하며 잔뜩 추켜세워 놓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이제는 그를 끌어안고 그의 아픈 상처를 씻어주자”고 화답을 했다.

그래서 일까. ‘눈물의 편지’ 이후 김 의원은 본회의장에 역시 자필로 쓴 연설문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검찰을 향해 “나부터 잡아가라”고 호통을 치면서 ‘역시 김부겸’이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김 의원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분석이다. 내년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박 원내대표에게 결선에서 고배를 마신 강봉균 의원과 맞서야 한다. 또한 손 대표를 대선후보로 만들기위한 노력까지 김 의원의 역할을 필요로하는 시기가 재차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민주당 정장선 국회의원 “김부겸식 정치 빛 발할 때 온다”

민주당내 김부겸 의원과 함께 합리적 중도 개혁 성향으로 친분이 깊은 인사가 3선의 정장선 의원이다. 정 의원과 김 의원은 지난 2007년 민주당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 캠프에서 일을 했고 여전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정 의원은 ‘눈물의 편지’와 ‘호통 연설’과 관련, 본지와 통화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 간판이 된 지금 한나라당 출신이냐 아니냐는 의미가 없다”며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그는 “우리 당 내에 아직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분위기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게 현실이다. 때문에 합리적이고 조정능력이 있는 김 의원이 그동안 각광을 받지 못했다”며 “하지만 김무성-박지원 두 원내대표가 대화를 통한 여야간 합의 정치가 정착되고 있다는 점에서 김 의원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가 곧 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질 않았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 약력

▲학력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회 회장
▲5·17 계엄령위반 구속,제적

▲경력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한나라당 경기군포지구당 위원장
▲한나라당 부대변인
▲미래를 위한청년연대 공동대표
▲제16대 국회의원(경기 군포)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열린우리당 홍보담당 원내부대표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
▲제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현) 제18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 통합민주당·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통령경선후보 선대위 본부장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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