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마저 ‘이중 잣대’ 논란…대북 전단 살포 vs 국가보안법 철폐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대북(對北)전단(ビラ·Bill·삐라)’에 대한 북한의 비난에 우리 정부가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北 김여정의 맹비난이 있은 지 반나절 만에 청와대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며 지난 11일 “엄정 대응”을 선포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법률안을 내놨다. ‘대북 전단 금지’ 전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정부의 ‘대북 전단 살포 금지’는 위헌(違憲)”이라고 반발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것. 그런데 ‘국가보안법 철폐론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도 이중 잣대다. 그래서 일요서울이 이를 알아봤다.
-朴 서울시장 “국가보안법은 ‘사상 탄압법’…하지만 대북 전단 안 돼”
-국정원·안보기관 전문가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 마지막 보루”
박상학(52)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지난달 31일 경기도 김포에서 대북(對北) 전단을 살포했다. 그가 보낸 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행동 하겠다는 위선자 北 김정은’이라고 쓰였다. 지난 1997년, 북한 기술관료로 성장하던 박 대표는 황장엽 망명 이후 탈북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보위부에 발각돼 약혼녀와 가족들은 모진 고문 끝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대북 전단 살포 등 북한인권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지난 4일 北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입’인 김여정은 대북 전단을 살포한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사람값도 못하는 쓰레기들”이라는 비방성 담화문을 내놨다. 그런데 통일부는 비방문 발표 4시간 만에 긴급 브리핑을 열고 “대북 전단 살포는 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했고 청와대 또한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청와대는 北 비방문 발표 7일 만인 지난 11일,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통해 “정부는 대북 전단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 및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부의 ‘대북 전단 살포 금지’는 위헌(違憲)”이라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법조단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장 김태훈)’은 지난 5일 오후 일요서울에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은 중대한 위헌”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 통상 ‘표현의 자유’라고 불리는 항목으로, 민주적 법치국가의 질서 형성의 기초라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받는다. 그렇기에 대북 전단 또한 이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변’은 이날 “북한 체제를 비판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한다 하더라도 대북 전단 살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서 보장되고, 법률로써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北 김여정의 막말에 이어 명령조로 우리 정부를 훈계하는 내정간섭성 도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즉각 엄중 항의는커녕 맞장구치며 전폭 수용해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 침해 및 주권을 포기하는 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듭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최근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마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국가보안법(7조) 철폐론자’들의 ‘이중 잣대’ 때문이다.
박원순 “국가보안법은 사상탄압법…대북 전단은 반대”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반(反)국가단체’에 대한 마지막 방어수단이다. 특히 우리나라 형법 제97조에 따르면 ‘적국(敵國)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적국’으로 규정돼 있어 형법만으로는 반국가반체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 군형법(13조) 또한 같은 처지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철폐론자들이 주로 겨냥하는 조항은 바로 ‘7조’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에서다. 동법 7조1항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그 구성원·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 및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긴급행동’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후보 시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 7조 개정을 공약했다”면서 “민주당이 이번에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않는다면 민심의 분노는 여당을 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지난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으로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됐다”며 “국가보안법 철폐는 자주통일로 가기 위한 절박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9일 전인 지난달 21일 ‘국가보안법7조부터폐지운동시민연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세상을 떠난 어떤 목사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막시스트(Marxist)도 휴머니스트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북한 서적(원전)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옥살이를 했다”고 했다.
이 같은 주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논리는 바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것. 헌법 제21조에서 언급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사정기관 자료 등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자 가운데 92% 이상이 제7조 위반이다.
일요서울은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박원순 現 서울시장의 과거 논문(국가보안법 연구)을 입수했다. 박 시장의 ‘국가보안법 연구’는 세 권의 저서로 구분된다. 전체 1183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연구논문으로, 국가보안법에 관한 그의 연구실적은 거의 독보적이다.
우선 박 시장은 ‘연구3’에서 국가보안법을 ‘사상탄압법(法)’으로 규정한다(143). 그는 “국가보안법은 조문 자체에서 이미 사상의 자유를 유린하려는 의도를 내재하고 있다”면서 “‘공산계열’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유린하는 근거지가 됐다. ‘공산주의’의 개념적 범주 자체도 광범위한데 ‘계열’이라는 단어까지 부가돼 공산주의의 이웃과 주변에 위치한 수많은 사상적 흐름이 모두 국가보안법의 ‘유효사거리’ 내에 들어오게 된 것(146)”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그는 “어느 정치사상이 국민의 다수의 지지를 얻느냐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고 국민은 다수의 사상에 따르되 소수의 사상의 자유 보장이 필수적(141)”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그가 언급한 ‘소수의 사상’이 어떤 것인지는 해당 면에서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박 시장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은…어떤 적극적 기준에 의해 행위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소극적인 이유 때문에 불법성이 판단된다는 사실”이라며 “이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요구함으로써 진취적 주장과 긍정적 자세를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148)”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공(反共)주의자들에 따르면 반공이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사상이라고 하나…이는 맹목적으로 공산주의를 부정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어떤 적극적인 가치를 내포하지 않은 부정의 가치일 뿐”이라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강력한 사상적 (탄압)무기(150)”라고 낙인을 찍었다.
박 시장은 ‘연구3’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더욱 과감히 규정한다. 그는 “사상의 형성·유지·표현에 대한 탄압(151)” 항목에서 “국가보안법 혐의의 경우 수사기관이 기소만 하면 유죄판결은 저절로 나왔다”며 “사상의 감옥이 됐다(159)”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론은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惡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지난 9일 오전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 북한 정권 입장에서 좋아할 리 있겠나.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그런 행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더 큰 남북관계의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도 이중 잣대…내로남불?
박 시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국가보안법을 겨냥해 “사상탄압법(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북 통일의 길은 상호 양보·타협의 전제로 하는데, 이 모든 양보·타협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고무·찬양·동조(7조)에 해당되기 때문(132)”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의 일환인 대북 전단 살포 행위는 반대한다. 즉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폐지되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 행위의 일환인 대북 전단 살포는 반대한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위헌(違憲) 소지가 있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형국이다.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놓고 의정부지법(제30민사부)은 지난 2015년 “대북 전단 살포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어 일정 지역에서의 살포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주장은,…남북 관계의 긴장을 유발할 수도 있는 표현행위를 한 사람에게 그러한 표현 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다는 논리에 이를 수도 있는바,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의 행사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대북 전단 살포 행위는 그 자체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 영역 안에 있다고 볼 여지가 크고 폭력적인 표현 행위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결했다(2015카합18 방해금지가처분).
당시 일부 지역민들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해 “북한의 지도부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단파라디오 등이 들어있는 풍선을 날려 보내는 행위, 풍선에 수소를 주입하는 장치를 지역 내로 반입하는 행위, 이를 언론을 통해 알리는 행위를 했을 경우 200만 원의 위반금을 지급하라”는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걸었다. 하지만 의정부지법(이관용·이유영·김남균 판사)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 행위로 본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북 전단 살포를 하지 못하게 가처분 신청을 냈던 측의 변호인은 총 11명(설창일·천낙붕·심재환·하주희·김유정·남성욱·김종귀·김용민·김진형·양승봉·이광철)이다. 현재 문재인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재직 중인 이광철 당시 변호사는 ‘이석기 국가 내란 음모죄’로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심판에서 통합진보당을 대리했다.
게다가 줄곧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심재환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의 남편으로, 이석기 의원의 ‘민혁당’ 사건과 ‘송두율 국가보안법 위반’, ‘일심회·왕재산 간첩사건’에서 변호인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북한은 무력 남침·대남 적화 전략을 포기하였는데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여전히 반(反)국가단체로 본다”면서 “국가보안법은 위헌(違憲)”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박 대표를 변호했던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전 이사장은 지난 1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던 인사들이 과거에는 ‘표현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고 나서더니 이번에는 판례도 무시하고 북한이 싫어하는 전단 살포를 막겠다고 나서는 게 제정신인가”라며 “심지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판례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국가관마저도 내로남불”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특히 청와대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핵심”이라며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할 때에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더니 이번 대북 전단 살포 제재를 빌미로 현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은 아예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내란음모’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권존중·국민주권·권력분립·사법독립·복수정당)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까지 용인하지 않는 제도가 방어적 민주주의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구체적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北 대남 적화 전략 그대로인데…국가보안법 ‘절벽 끝’
청와대가 엄정 대응하겠다고 나선 ‘대북 전단 살포 금지’와 물밑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다. 문제는 이것마저도 ‘이중 잣대’라는 것. 표현의 자유를 법원으로부터 보장받은 ‘대북 전단 살포’는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표현의 자유 때문에 독소조항을 품고 있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폐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을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막을 수 없다. 이미 국회의원 의석수는 과반 이상(176석)을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가보안법은 폐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년 이상 국가보안법을 연구한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출신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1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반(反)국가단체에 대한 마지막 방어수단”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이미 과반 이상 확보했기 때문에 통과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뿐만 아니라 더한 것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 4일 北 김여정은 우리 정부를 향해 ‘대북 전단’과 관련해 비방을 일삼았는데, 그로부터 7일 만에 청와대가 나서서 대북 전단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북한의 대남 외곽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1999년 4월10일 ‘민족대단결과 조국 통일을 위한 구호’라는 이름으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전면적인 자유내왕(왕래)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이행하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국가보안법 또한 철폐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안보기관 일선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에서 30년 동안 북한분석관으로 활동했던 곽길섭 분석관은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의 한 사무실에서 일요서울과 만나 “반(反)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 전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국가보안법을 만든 이유는 분단국가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좀 더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북한은 핵무력 달성을 기반으로 대남 적화 전략이 멈추지 않은 가운데,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대의 겉면만을 추측해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어느덧 70주년을 맞이했지만 정작 북한은 사과는커녕 호통을 치는 형국이다. 과연 국가보안법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곽 분석관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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