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서 대미 정책 제시
"새로운 북미관계 열쇠는 대조선 적대 철회"
전문가들 "北 기존 입장과 크게 안 달라져"
"당장 비핵화 진전 기대보다 협상 지렛대↑"
"바이든 정부도 양보 어려울 것으로 판단"
北 핵무력 증강 공개 선언에 美 반응이 관건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주재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시스]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주재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대북 적대 정책'의 철회를 재차 요구했다. 북미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관계 개선 여부가 미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공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 '주적'이라는 점을 명확히하고, 당 대회에서 핵무력을 증강을 공개 선언하면서 향후 바이든 정부의 반응에 따라 향후 북미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노동당 8차 대회의 7기 사업총화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 시 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우리 당의 입장을 엄숙히 천명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해야 한다"며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가 확정된 후 두 달여 동안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도 바이든 당선자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정권 교체를 언급하며 대미 정책에 대한 기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북 적대 정책을 철회하기 전에는 대화가 힘들다는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며 "바이든 정부에게도 기존 입장을 강하게 요구하며 일단 문턱을 높여 반응을 보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미국의 국내 상황과 대북 정책 수립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감안해 당장 비핵화 진전을 기대하기보다는 기존 요구 조건을 고수하면서 협상 지렛대를 일단 높여놓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더 극심해졌고, 바이든 신행정부가 출범해도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 특히 단기적으로 대북 비핵화 협상에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 등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새로운 북미 관계 구축이라는 희망은 거의 포기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북미는 지난 2018년 6월 역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등에 대한 역사적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가 장기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제재 해제 조건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데 따른 것으로 북한은 미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적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담화를 통해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적으로 보는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지난 5년간의 성과로 핵무력 완성을 제시하고, 고도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미국의 행동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김 위원장은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돼 핵무기를 소형 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하고 초대형수소탄개발이 완성됐다"고 평가하면서 "다탄두개별유도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핵무력 완성에 만족하지 않고,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계속하며 핵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아울러 수중 및 지상 고체 발동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개발 사업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민 실장은 "북한이 핵무력 증강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향후 미국의 반응에 따라 북미 대치가 강경하게 흐를 수 있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미국이 핵무력 증강 선언에 대해 유감의 표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기존 북미 합의의 위반 및 파기로 간주하긴 당장 힘들다"며 향후 무기들의 실험이 재개되면 북미 간 강대강 대치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은 핵무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수위 조절도 병행했다.

김 위원장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적대 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전쟁 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먼저 강경 행보를 보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에 유연성을 제공했다기보다는 경직성을 가져온 만큼 북미 관계는 당분간 경색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해야겠다고 입장을 정리할 가능성은 적고, 대화 기조는 열어두겠지만 북한의 명백한 핵보유 의도와 도발 기도에는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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