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의 이석준 국민의힘 대표는 보수의 핵심 가치는 ‘공정(公正)과 경쟁’이라고 했다. 그의 공정과 경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자신이 2019년 출판한 저서 제목조차 ‘공정한 경쟁’으로 붙였다는데서도 드러났다. 공평하고 정대해야 하는 ‘공정’은 누구나 시대를 초월해 바라는 단어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즐겨 쓰던 말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공정’을 부각시키며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자기에게 유리하면 공정이고 불리하면 적폐 또는 개혁 대상으로 몰아세웠다. 그는 2019년 9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고도 격찬했다.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의 당부대로 “살아 있는 권력”인 조국 법무부장관 일가의 파렴치·탈법 작태와 청와대·정부·집권여당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 수사에 성역 없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소신껏 잘한다고 격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직간접으로 윤 총장의 수사를 견제했다. 끝내 윤 총장을 몰아내고 말았다. 윤 총장 사태 하나만으로도 문 대통령의 ‘공정’은 자기에게 유리하면 “공정”이고 불리하면 적폐 또는 개혁 대상으로 내친다는 불공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가 보수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공정과 경쟁”도 자기에게 유리하면 공정이고 불리하면 개혁 대상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공정을 외치면서도 불공정으로 빠졌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치권에서 공정은 늘상 불공정으로 뒤집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대표의 공정에 대해서는 기대해 볼 만한 몇몇 구석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는 20대의 지적 성숙기를 미국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미국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탈권위주의적 개성, 정정당당한 페어 플레이(Fair Play), 공정한 경쟁 등에 젖어 듯 것 같다는 데서 그렇다. 그는 귀국 후에도 권위주의·불공정·중상비방·줄서기 등의 탁한 정치권 구습에 휩쓸리지 않고 미국 유학시절의 자유분방한 탈권위주의적 개성과 페어 플레이 및 공정 경쟁 의식을 잊지 않은 듯 싶다. 그러한 그의 자유분방한 탈권위주의적 의식은 당대표로 첫 출근하던 날에도 드러났다. 그는 당이 제공하는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 대신 서울시 공유 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당대표 선거 때도 선거 사무실, 운동원, 차량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특정인에 대한 편의 제공은 없고 당 대변인·지방선거 후보도 토론과 경쟁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제정책에서도 배분보다는 성장을 중시하겠다며 경쟁을 강조했다. 통일 문제에서는 체제 우위 측에 의한 흡수통일을 주장했다. 대북 경제지원과 관련해선 북한이 남한에서 보내 준 쌀을 남한 것이라고 밝힌다면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또한 공정에 기반한 조건들이다. 대외 강경책과 대내 자유경쟁을 강조한 미국 공화당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표는 정치권에서 한 번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던 ‘공정과 경쟁’을 들고 나섰다. 그의 공정이 정치권의 불공정 흙탕물속에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공하면 한국정치 선진화에 큰 획을 긋는다. 하지만 실패하면 이준석의 공정 또한 문재인의 공정을 닮고 만다. 이준석 공정이 한 젊은이의 무지개 빛 이상향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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