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도쿄올림픽을 둘러싼 한일 외교전쟁의 막이 올랐다. 다만 최대 이벤트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주한 일본공사의 망언에 따른 여론악화는 물론 한일 양국간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일 모두 국내 정치적 이슈로 양국관계 회복의 기회를 놓치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방일 무산에 따른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양국 정상이 언제든 만나길 바라며 실무적 협상은 계속 해나가라고 지시하면서 한일정상회담의 극적 재개 가능성도 열려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 이후 일한(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나라(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한국 측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고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 모두 한일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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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착상태 한일관계 풀 극적 승부수폐막식 극적회동 카드
- , 악재만발 도쿄올림픽 돌파구 마련 위해 수용 가능성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아니라 폐막식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은 물론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외교가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과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방한했던 점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 또한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답방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과거사 해법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의 여파로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 정상이 만나서 톱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일 양국간 실무협상의 진척 여부와 여론의 향배다. 한일 정상의 만남 이전에 실무협상 과정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도출된다면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폐막식 참석과 이를 계기로 한 스가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다. 아울러 한일정상간 만남이 빈손회동이 아니라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한다면 관계개선에 부정적이었던 양국 여론 또한 우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 재개를 둘러싼 외교전쟁의 막전막후를 짚어봤다.

성사직전까지 갔던 한일정상회담2% 부족

도쿄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 19일 오전 청와대는 분주히 움직였다. 이른 아침부터 일본 요미우리발로 문 대통령의 방일과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정상회담 성사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요리우리의 보도는 꽤나 구체적이었다.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방일해서 도교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스가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회담 장소까지 지목하면서 보도의 신빙성을 높였다. 문 대통령의 방일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파장이 엄청났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방일반대 여론을 누르고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극적 결단을 내렸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다만 이날 오후 청와대 긴급 발표는 요미우리 보도와는 정반대였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한 방일 및 한일정상회담 무산을 알렸다. 박 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협의를 나눴다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 거론됐던 김부겸 국무총리의 방일도 무산되면서 결과적으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 정부 대표단 대표 자격으로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일정상회담 무산은 빈손회담이 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 조치를 요구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해법을 요구한 일본 측의 이해관계가 팽팽했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이 만나서 현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감정섞인 신경전만 벌일 경우 성과있는 합의가 나오기 힘든 구조였다. 아울러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국간 팽팽한 인식 차이는 물론 새로운 악재들도 돌출됐다. 일본 측이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국민감정을 건드린 것도 걸림돌이었다.

박 수석 역시 이와 관련해 정상회담의 성과로서 양국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 이에 현안에 대해 막판까지 접근했으나 성과로 발표하기엔 부족했다결정적인 계기는 아니나 우리 국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박 수석이 설명한 어떤 상황은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망언이었다. 외교가를 중심으로 한일정상회담 무산의 결정적인 배경은 소마 공사의 망언이 꼽혔다. 소마 공사는 국내 언론과의 접촉에서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대응에 대해 마스터베이션(자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외교관계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이었다.

여야 차기주자들 역시 역대급 망언이라며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기자 시절 도쿄특파원을 지냈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역시 일본 외교의 수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승민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일본 정부는 소마 공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한일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스가총리, 뉴시스
스가총리, 뉴시스

대통령 아쉽다스가총리 소통 원해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에도 불구하고 한일정상회담 재개설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한일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이번 사태에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 회담에서도 무산된 한일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양측 간 누적한 실무협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현안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한일관계는 말그대로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와 대면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취임 초 의례적인 전화통화와 화상으로 열린 다자정상회의에서 스치듯 접촉한 게 전부다. 특히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 성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짧은 대화에 그쳤다.

아베 전 총리와의 인연은 더 고약하다. 문 대통령은 2019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8초 악수가 회동의 전부였다. 취임 이후 아베 전 총리와도 국제회의는 물론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만났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2018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설전을 주고받을 정도도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기도 했다.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점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반등 요인이 충분하다. 희망적인 시그널은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여전히 대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방일 무산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양국 정상이 언제든 만나길 바라며 실무적 협상은 계속 해 나가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 무산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자회담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한일 외교당국간 소통 또한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마 공사의 망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가 이뤄질 경우 한일정상회담 재개는 의외로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현재까지 일본 측으로부터 소마 공사에 대한 어떠한 조치가 이뤄졌다는 공식적인 통보는 없다시급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마 공사의 망언이 정상회담 무산의 결정적인 배경이었던 만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소마 공사의 교체가 이뤄질 경우 우리 정부도 회담 성사를 위해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중미 지역을 순방 중인 모테기 일본 외무상은 소마 총괄공사의 발언과 관련, “외교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가 총리 역시 비슷한 논평을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소마 공사의 경질성 교체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측 역시 보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전망이다.

올림픽 성공올인 , 대통령 폐막식 참석 극적

소마공사는 7월16일 JTBC 취재진과 만나 "일본 정부는 한일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혼자서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다 "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뉴시스
소마공사는 7월16일 JTBC 취재진과 만나 "일본 정부는 한일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혼자서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다 "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뉴시스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88일 도쿄올림픽 폐막식에 맞춰 방일하는 방안이 정치권과 외교가를 중심으로 아디이어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러졌다. 냉랭한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여전히 낮은 가능성이지만 한일 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떵러지면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박 수석 역시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폐막식 참석 가능성에 대해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면서 좋은 아이디이어인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싼 양국간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면서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화라인을 재가동하고 접촉에 나설 경우 의외로 손쉽게 풀릴 수 있다. 더구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중견제를 위해 미국이 한미일 3각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일관계 정상화도 시급하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내년 5월까지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여야 차기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내년 이후에는 완전한 대선국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연말까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 의견 접근은 물론 일본 측의 수출규제 철회 역시 풀어야 할 사안이다. 올림픽 폐막식 참석이 물건너 가더라도 한 차례의 기회는 더 있다. 관심이 쏠리는 건 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다. 전통적으로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는 대일외교와 관련한 중대 메시지가 포함된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향적인 내용을 발표한다면 일본 측의 화답 여부가 주목된다.

스가 총리의 상황은 문 대통령보다 더 어렵다. 도쿄올림피 성공을 위해 올인에 나선 상황이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1년 연기된 끝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은 해외 정상들의 참석이 보이콧되면서 올림픽 외교는 실종된 상황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 악화에 따라 올림픽 정상개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올 지경이다. 더구나 스가 내각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것은 물론 가을 총선거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올림픽 폐막식에 맞춰 이웃나라 정상이 방문할 경우 정치적 곤경에 처한 스가 총리에게는 천군만마가 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소식통은 한일관계는 흔히 가깝고로 먼나라로 불리는데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여론의 변수에 따라 출렁일 때가 많다정치와 이념을 뛰어넘는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양국 정상의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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