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고정애 기자가 2007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을 관장했던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칼럼(‘강재섭의 조언’)을 통해 정치현장으로 소환했다. 강재섭 전 대표는 좌파정권 10년을 종식하고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으나, 친이·친박으로부터 경원시 당한 불운(不運)한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강재섭 전 대표는 최근 윤석열·이준석의 갈등 부각에 “이 대표가 우리와 전혀 다른 코드에서 일하니 그걸 믿고 너무 헐뜯으면 안 된다.” “이 대표가 (후보들) 부족한 얘기는 사적으로 하면 좋겠다. 너무 밖으로 얘기를 많이 한다.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해야지, 본인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후보들 각자 개성을 살리도록 놓아두어야 한다.”고 고언(苦言)을 했다.

대선 정국에서 당 대표와 경선 후보들 사이엔 긴장이 흐를 수밖에 없는데, 강재섭 전 대표는 대표 계보로는 손자뻘 되는 후배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면서도 따끔한 훈계를 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대여투쟁은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대선 후보들을 직격(直擊)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이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으로 국민의힘은 지금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4.7 재보선의 압도적 야권 승세가 넉 달 만에 사라져 이대로 가면 정권교체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는 비상시국이다.

강재섭 전 대표는 2007년 상황을 회상했다. “저 사람들(후보들)과 나중에 원수지더라도 역사적 사명이니까 ‘내 식대로(후보들의 양해 받음)’ 끌고 가야 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전국 순회 토론과 ‘국민검증위’였다.”

지금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법으로 대여공세보다는 당내 검증에 몰두하고 있다. 본선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 적당한 공방과 검증은 경선 과정에서 흥행을 돕는 ‘양념’과도 같다. 그러나 검증이 저격이 되어 분열을 조장하면 안 된다. 검증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린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공박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홍준표 후보는 지난 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이끌었던 적폐청산 수사로 다섯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0명 이상이 구속되고, 900명 이상이 조사를 받았다”면서 “윤 전 총장은 보수 우파를 궤멸시킨 주범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상적인 통치행위와 정치행위를 직권남용이라는 법률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혐의로 기소했다. 폭력적이고 무도한 수사였다.”라고 주장했다.

유승민 후보는 지난 7월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기소·구형까지의 주체였다”고 지적하며, “국회에서 탄핵한 것까지는 내 역할이 맞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다음에는 검찰과 법원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후보는 지난 8월 9일 윤석열 후보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고 했었다’는 취지로 언급한 데 대해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원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책임과 관련,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고 우리가 모두 국민에게 심판받은 것”이라며,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임을 밝혔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가 취한 행동은 정치윤리를 의심케하는 패륜적인 것이었다. 2017년 3월 29일. 당시 홍준표 경남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춘향이 인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어서 국민들이 분노한 것”이라며 “탄핵 당해도 싸다”고 조롱했다.

그해 11월 3일.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호 당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제 출당 조치하고, 직권으로 제명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당에서 정치적인 배려를 했더라면 오늘 홍준표 후보의 당내 위상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2017년 2월 6일. 당시 유승민 의원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내가 주도했다. 흔들리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탄핵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2017년 1월 4일.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2016년 12월 9일) 된 후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는 각각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켰고, 탄핵했고, 탈당한 원죄(原罪)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윤석열 후보를 탄핵하기 전에 자신들이 과거에 한 일에 대해 진정한 참회(懺悔)부터 해야 한다.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한 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 여권이 행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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