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정부는 8월15일 이슬람 과격무장 단체 탈레반(학생의 뜻)에 항복했다. 같은 날 이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현금 보따리를 챙겨들고 이웃 타자키스탄으로 도망쳤다. 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카불을 사수하겠다고 장담하며 국민들을 속였다. 아프간 정부군은 서류상으로는 30만명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봉급을 타기 위한 유령병사가 많았다고 한다. 정부는 군과 경찰의 봉급도 제대로 주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했다. 아프간군은 미국의 최첨단 군사 장비로 무장되었지만, 소총을 든 5만-6만여명의 탈레반 공격 앞에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정부의 무능, 지도층 분열, 부패, 종족 분렬, 자유체제 수호의지 결여 등 탓이다. 아프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502달러 정도로 세계 최빈국 상태이다. 교육수준이 낮아 경찰관들 중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프간은 역사적으로 “제국(帝國)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19세기 영국은 아프간에 침공 했지만 반격에 부딪혀 1919년 독립을 허용, 철수했다. 1979년 소련도 침공했으나 1989년 철수했고 미국도 침공 20년만인 2021년 패퇴했다. 미국은 카불이 함락되던 과정을 1975년 4월 월남이 공산 월맹군에 의해 정복되던 때처럼 그저 강 간너 불 보듯 했다. 월남이 패망하던 날 월남인들은 목숨 걸고 사이공을 탈출키 위해 미국 대사관 옥상으로 몰려가 미군 헬기에 매달렸다. 46년 뒤 아프간인들도 카불에서 탈출키 위해 이륙하는 미국 군용기에 매달렸다가 이륙 후 참혹히 추락하기도 했다.  
 

알카에다 (극단적 무슬림 무장세력)는 2001년 9월11일((9.11) 미국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과 워싱턴 DC 건물에 충돌시켜 2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여기에 미국은 같은 해 10월7일 알카에다의 은신처였고 이슬람 과격분자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간의 카불을 비롯한 주요 군사기지들을 폭격하기 시작, 침공했다. 그 후 미국은 저항하는 탈레반 잔당을 소탕키 위해 한 때 14만명의 미군을 투입시켰다. 2448명이 전사했으며 2조2610억달러(한화2581조원)를 쏟아 부었다. 여성권익 회복, 언론자유, 민주화 등에 적극 나섰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탈레반 소탕전은 20년 지속되면서 염증을 자아냈다. 지난 7월 미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70%가 철군을 지지했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탈레반과의 협상을 체결, 올 5월1일 까지 미군철수를 공약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9월11일 까지 철군을 완료키로 했다. 미군 철수를 확신한 탈레반은 총 공세를 펼쳐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미국은 “영원한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떼고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 저지에 전념하려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성급한 아프간 철군과 카불 함락으로 국제적으로 신뢰를 잃었다. 바이든은 작년 11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 후 “미국은 돌아왔다”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대미 불신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바이든도 동맹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 트럼프 처럼 “미국 우선주의자”라며 불신과 배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카불 함락을 가장 반가워할 정권은 북한이다. 북한은 아프간처럼 남한 내 여론을 분열시키고 핵·미사일을 증강시키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 할 게 분명하다. 북한은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켜보며 주한민군도 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북한은 앞으로 북핵 폐기 보다는 주한미군 철수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미군 철수를 촉매키 위한 대남·대미 도발도 더 강해질 게 분명하다. 여기에 한국은 결연한 자유체제 수호의지와 미국이 아프간처럼 한국도 동맹가치가 없다고 간주하고 훌쩍 떠나지 않도록 한·미동맹을 굳건히 다져야 한다. 우리 군대는 나약한 “월남군” “아프간군“이 되어선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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