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무슨 일 있어도 좋은 곳 같이 가요” 극단적 선택 앞두고 청년들이 걱정한 것은?

재판부 “인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실감’ 때문”

‘자살방조미수’ 해당 판결문
‘자살방조미수’ 해당 판결문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올해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 1위를 떠안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자살의 가장 흔한 원인은 우울증 때문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여길 만큼 일반적이지만 대한신경과학회가 “한국은 우울증 치료를 받기 가장 어려운 나라”라고 지적할 만큼 사회적 인식은 현저히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조계에서 2년 전 판결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함께 자살 기도를 한 30대 청년 세 명의 ‘자살방조미수’ 관련 판결문에는 생활고와 우울증 등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비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재판장의 의지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법조계는 “판결문에 고루한 법률 용어가 아닌 피고인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 눈시울을 적셨다”는 반응이다. 일요서울은 해당 판결문을 단독 입수해 그 내용을 소개한다.

2019년 12월4일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는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기소된 A(당시 29세)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B(당시 35세)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에게 보호관찰 받을 것을 함께 명령했다.

해당 판결문을 쓴 박주영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자살 시도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사정을 피고인들에 대한 적정한 형을 정하는 데 참고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방지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사건의 상세한 사정을 부기한다”며 A4용지 20여 장에 청년들이 겪어 온 삶의 모습과 그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사연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성장한 A씨는 어머니가 지병으로 사망한 데다 직장 생활과 대인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이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인 트위터 계정에 ‘동반 자살 하실 분 도와주세요’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해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할 B씨와 C씨를 만났다.

이들은 SNS 메시지를 통해 자살 방법을 논의하다 8월10일 오전 피고인 B와 C가 있는 울산에 모여 도구 등을 준비해 한 여관방에서 함께 자살을 시도하기로 논의했다. 실행에 옮기기 전 피고인 A씨는 인터넷에서 질소가스와 헬륨가스로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해 발견한 글을 공유하고 피고인 B씨는 질소가스 한 통과 스타렉스 차량을 준비했다.

세 청년들이 사건 실행을 위해 만나기 전 나눈 SNS 메시지상에선 “저도 어제 가불 땡기고 신불자 작업 대출까지 해서 올인났네요ㅠ” “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죄송하네요” “어유 다 그렇죠. 돈 있으면 죽을 일 있나요 뭐 다 돈 때문이죠” “고생은요 무슨,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질소 중독 치사량 쫌 알아볼 수 있나요? 암만 구글링 해도 안 나오네요” “저도 그거 찾고 있어요. 찾으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아침에 돈을 좀 썼는데 어찌어찌 6만 원을 만들었어요. 돈 구하기 진짜 힘드네요. 더 구해 볼께요”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미안해요. 멀리서 오시고 차 준비해주시고ㅠ”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급할 때 3만 원 구하기도 힘들더라고요. 참 쪽팔리고 서럽더라고요ㅠ” “맞아요ㅋㅋ”
“저는 2일 전에 치과카드선불 결제한 거 땡깡 부려서 현금 받아냈어요ㅋㅋ” 
“ㅋㅋㅋ우리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곳으로 같이 가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ㅎㅎ” “3번째 실패해서 하 지긋지긋하네요” 
“무슨 일하세요?” “저는 직업 없습니다” “저도 백수 3개월 차ㅋㅋ” 
“너무 빨리 오신 거 아니에요?” “전 집이 없어서요ㅋㅋ 갈 데가 없어요. 방 보증금도 빼서 다 쓴지 오래라 모텔만 지겹게 있었네요” 
“전 덤프 몰아요” “대단하시네요. 전 면허도 없는데” “인생 하바리 운전이죠 뭐” 
“제가 좀 생각해 봤는데 질소 혹시 부족할 거 같으면 제 핸드폰 파는 거 어떠신가요. 알아보니까 20만 원 정도 중고 값 받을 것 같네요”
등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오후 6시경 함께 모인 이들은 B씨가 운전하는 차에 탄 뒤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모아 그 돈으로 헬륨가스를 구입하고 A씨가 자신의 휴대폰을 중고로 판돈으로 비닐봉지와 청 테이프, 호스, 칼 등을 추가로 구입한 후 울산 남구의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날 저녁 10시경 맥주 피처 한 병과 소주 두 병, 컵라면을 사고 치킨까지 배달시킨 이들은 서로 어색함이 흐르는 가운데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셋은 모두 술을 싫어해 A씨와 B씨만 소주 반병을 마시고 음식은 대부분 남겼다. 

이후 준비한 가스통과 비닐에 호스를 연결해 ‘자살용 도구’ 제작을 마친 후 잠을 청했다. 잠이 쉽게 들지 않아 한참을 누워 있다가 다음 날 새벽 일어나 모두 각자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직접 가스 밸브를 연 후 누웠다. B씨는 “막상 죽으려니 두려웠고 생에 대한 미련이 남았으며 숨까지 막히자 먼저 비닐봉지를 벗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C씨의 비닐봉지를 찢은 후 119에 신고했다. A씨는 가스가 잘 나오지 않아 실패하며 미수에 그치게 됐다. 

이에 A씨와 B씨는 서로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A씨는 사람을 모으고 도구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됐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범행은 신병을 비관한 피고인들이 SNS로 함께 자살할 사람을 물색해 만난 다음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범행은 각자의 자살 의지를 강화해 그 실행을 용이하게 서로 도움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결코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특별한 전과가 없는 점,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점, 다행스럽게도 자살이 미수에 그쳤고, 의식 불명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했던 C가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과 아울러 피고인들의 나이, 성향,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부연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
극단적 선택의 전조 증상

이들의 건강 상태에는 ‘우울증’ 증상도 포함돼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경험은 없으나 자살 시도는 여러 번 있는 등 우울증이 의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느냐는 보호관찰관의 질문에 그는 “아는 사람에게 말하기에는 걱정을 시킬까 봐 그러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창피했으며 생명의 전화 등에 연락해 봤자 ‘힘내’라는 말이 전부 아니었을까? 그런 흔하고 뻔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B씨도 마찬가지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전력이 2차례 있으나 수면제 처방으로 호전됐고 이후 다시 사회적 상황에서 위축되고 불편하며 소극적이고 화를 내거나 기분 변동이 심해 분노 통제를 못하며 무모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파악됐다. 정서적 불안정과 공허함에 시달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대처 능력이 저조해 불안과 우울, 자살사고 등의 위험이 높아 치료가 필요할 정도고 스스로도 심리적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신경과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정부의 규제로 인해 주요국 중 우울증 치료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도 우울증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뉴시스]
대한신경과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정부의 규제로 인해 주요국 중 우울증 치료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도 우울증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뉴시스]

재판부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서
고립감 속 자살, 서글픈 현실”

박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 처지가 크게 상이함에도 피고인들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공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 비춰 보면 결국 인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실감 때문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들 역시 불우한 유년기와 어머니의 사망, 경제적 파탄, 대인관계의 단절 등으로 인해 사회적 존재감이 계속 축소되다 극단적 고립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피고인들이 전혀 일면식조차 없던 상태임에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눈 마지막 대화가 자살에 대한 것이고 사심 없는 순수한 생의 마지막 호의가 죽음의 동행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라면서도 “죽기로 마음먹었을 때에야 비로소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서글프기 그지없다. 인터넷이 이제 사물에까지 연결되고 소셜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이 시대에서 고립감을 견딜 수 없어 자살에 이르렀다는 이 사실은 너무나 역설적이고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재판 당시 A씨는 “저를 부모로 여겼던 여동생에게 미안해서라도 용기를 내서 살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A씨의 여동생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행복해서 오빠를 돌아보지 못했다. 이제 오빠를 지켜주고 싶다”는 탄원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구치소에서 A씨와 함께 생활한 한 제소자도 “A씨의 가정사와 범행 경위를 듣고 마음이 쓰여 위로했다. 이제 그는 많은 격려와 조언을 듣고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해졌다. 재판장께서 A씨에게 따뜻한 말과 희망을 전해주고 선처해 달라. 범죄자지만 염치없이 부탁드린다”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피고인들의 범행은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후 그는 따로 준비해온 ‘피고인들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 말씀’이라는 편지를 통해 “피고인들의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 형의 선고로 모두 끝났지만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각자 써내려 가야 한다”며 “그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하며 설령 앞으로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절대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편지 낭독 이후 피고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책 한 권씩을 선물하고 범행에 필요한 도구 등을 마련하느라 휴대폰까지 팔아 차비마저 없던 A씨에게 20만 원의 사비와 함께 “밥 든든히 먹고 어린 조카 선물이라도 사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판결문을 읽은 전응준 변호사는 일요서울에 “일반적인 판결문과는 많이 다르다. 원칙대로 한두 페이지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관이 A4용지 20장 가까이 정성을 들여 쓴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런 부분을 봐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재판부가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루한 법률 용어들이 아닌 피고인들의 눈물겨운 사정과 탄원서 등이 판결문에 상세하게 담겨 있어 읽는 내내 탄식이 나왔다”고 말했다. 

전아영 변호사는 한 기고문에서 “범죄 사실만 읽었는데도 이미 마음이 젖은 휴지조각 같다”며 “판결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단절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나, 세상의 대부분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나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동반 자살을 모의하며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몇 주째 문진처럼 가슴 한 켠을 누른다. 자살 계획의 실행을 앞두고 그들이 걱정한 것은 돈이었다”며 “돈이 없으면 자살도 못 하는구나. 죽기 위해 돈 걱정하는 이들의 대화 속에 허탈할 만큼 순수한 공감과 존중 같은 것이 있다”고 감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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