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집권세력은 “좌파 독단” “다수 폭정” “내로남불” “편가르기” “법치 파괴” “언어의 흉기화(凶器化)” 라는 비판을 자주 듣는다. 이런 비판은 집권세력이 정책을 국민들의 강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못 들은척하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데 기인한다. 집권세력이 국민의 비판 소리에 귀를 닫는 한 “좌파 독단” 등 힐난은 피할 수 없다.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비판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언어를 흉기화 할 정도로 막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궤변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집권세력이 이 비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말하는 정치에서 듣는 정치로 가야 한다.

   야권에서도 듣는 것 보다는 말의 힘을 과신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란 말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의 힘을 극대화” 할 때 상대편을 설득하고 여론을 일시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돌릴 수는 있다. 하지만 진심을 결여한 “말의 힘 극대화”는 감언이설로 뻗히거나 “언어의 흉기화”로 변질, 괴변과 막말로 빠질 수 있다.  

  23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금욕주의(Stoicism) 철학파의 창시자인 제노(334-262 B.C.)가 인간의 듣는 미덕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은 두 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말하는 것 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내 주장을 고집하기 보다는 상대편 말을 먼저 잘 들어야 한다는 금언이다. 지난날의 인류 역사는 “말 하는 것 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제노의 지적이 옳았음을 기록 한다. 국가간 전쟁은 상대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데서 터진 경우가 많았다. 개인의 경우도 저쪽의 말을 가볍게 여길 때 재산을 잃거나 친구를 상실하게 된다. 상대편의 말을 잘 경청한다면 오해도 풀릴 수 있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며 동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치 뿐 아니라 개인 관계에서도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상생의 길이 열린다.

  반대로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편안한 말만 받아들인다.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은 흘려버리고 기분을 즐겁게 하며 유익한 말만 골라 듣는다. 결국 남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을 듣는 셈이다. 그래서 전쟁도 벌어질 수 있고 친구도 상실케 되며 재산도 잃고 정치도 망치게 된다.

  집권 5년째로 접어든 문재인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도 감성풀이 말을 쏟아내며 상대편의 쓴 소리를 듣지 않는데 기인한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세계 언론 관계자들의 격렬한 비판에 대해 “뭣도 모르니까”라고 반박했다. “뭣도 모르니까”라는 반박은 “언론 징벌법”이라는 국내외 여론의 뼈아픈 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한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평택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자 평택 까지 찾아가 조문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괴롭힘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포 택배 사장 비극에는 조문도 언급도 없었다. 문 대통령이 반기업*친노조 코드에 갇혀 김포 택배 사장의 반노조 절규를 듣지 않은 탓이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의회민주의에서 상대편의 말을 경청하게 되면 의견 수렴*타협*화합*상생의 길이 열린다. 반대로 상대편 말에 귀를 닫게 되면 독단으로 치닫게 돼 갈등*대결*불신만 심화시킨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격의 없이” 시민들의 말을 듣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 귀는 좌편향 이념으로 막혔고 감성풀이 말이 무성하다. 대통령은 물론 모든 국민은 2300여 년 전 제노가 밝힌 대로 말 하기 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