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 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장점으로 “똑똑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재치가 넘쳐 똑똑해 보이면서도 슬기가 흐린 게 흠이다. 재치는 눈치 빠른 재주를 말하고 슬기는 사리에 맞는 올바른 분별력과 지혜를 의미한다. 이 후보의 순간적인 재치에 감동한 사람들은 환호한다. 반대로 즉흥적인 재치 보다는 사려 깊은 슬기와 지혜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은 실망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야당측은 이재명 후보를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자신이 몸통으로 돈을 갖고 있다면 “길가는 강아지에게 던져줄지라도...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 같은 분에게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강아지에게 던져줄지라도”의 튀는 대목은 순간 재치 있는 비유로 들렸다. 그러나 그는 흉악범도 아닌 현역 의원을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은유함으로써 경솔하고 천박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재치는 있어도 신중한 슬기와 따뜻한 덕성이 부족한 탓이다.

야당측은 “대장동 게이트” 주범으로 몰리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이재명의 측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측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그는 유동규 같은 “산하기관의 중간 간부가 다 측근이면 측근이 미어터질 것” “그 사람이 선거도 도왔느냐”며 도리어 반문했다.

하지만 유 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 지사의 측근이었으며 그의 선거를 도왔다.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유 전 본부장은 직원 8명과 함께 재판정에 나가 응원도 했다. 이 후보는 “중간 간부가 다 측근”이냐고 반문함으로써 중간 간부인 유 씨가 측근이 아닌 것으로 들리게 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변명에만 급급한 나머지 자기 말이 곧이어 부정적 파장을 일으킨다는 후속 결과를 의식하지 못했다. 재치만 넘친 때문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이 “설계자”라고 자랑한 대장동 개발에서 5,503억원을 환수해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 환수 사업” 이라고 자랑 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사업으로 1조7000억원을 환수했다“고 제시, 5,503억원 환수에 그친 이 지사의 ”단군 이래 최대“ 주장이 과장임을 입증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대장동 사업 민간 사업자가 무려 1조6000억원을 가져갔다고 주장, 이 지사가 민간 사업자들로부터 보다 더 많이 환수할 수 있었는데도 5,503억원으로 그쳤음을 엿보게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주장이 과장된 것으로 드러나자 “제도적 한계에 완전히 개발이익 환수를 못한 점에 대해 아쉽고 유감”이라며 사과했다. 자기 말이 과장된 것으로 비판된다는 걸 미쳐 생각지 못한 탓이다. 사려 깊은 슬기가 따르지 못한데 연유한다. 앞으로 그가 대선 후보로서 제시할 공약도 재치만 반짝이는 걸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공익 아니라 대중 인기와 욕망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이 후보는 “강아지에게 던져줄지라도” “산하기관의 측근이 다 측근이면 측근이 미어터질 것”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 환수 사업” 등 그때그때 튀는 단어들을 구사해 세인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재주가 있다. 순발력도 있다. 그래서 그의 재치와 순발력으로 포장된 말을 듣다보면 똑똑해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재명 같이 재치가 승하면 “똑똑하다”고 속단한다. 한국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드러낸 단면이다. 국가 지도자에게는 순간적이며 충동적인 재치 보다는 정직하고 두터운 덕성과 사리에 맞는 올바른 분별력이 요구된다. 그게 지도자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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