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아가 정신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피고인이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기록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① 피고인은 피해자보다 1살 어린 대학생으로서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대전에서 홀로 자취하는 대학생이라는 피해자와 20여 일 동안 약 1,000여 통의 문자메시지를 교환하였는데, 피해자와 교환한 문자메시지 내용에 피해자의 지적장애를 인식하였다고 볼 만한 내용은 없다.

② 피고인은 피해자와 음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교환하기도 하였지만 인터넷 게임과 대학 및 일상생활에 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자주 교환하였다.

③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욕을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이에서 만연히 한 행동으로 볼 여지가 있고, 피해자도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채팅을 통해 피고인에게 ‘죽여버릴테니까’, ‘자살해라’, ‘쓰레기 같은 놈’ 등의 과격한 말을 한 사실이 있다.

④ 피해자의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적이 있는 A는 제1심법정에서, 피해자의 부모가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고 말하기는 하였으나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외모나 언행에서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고,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바로 지적장애인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속칭 모자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⑤ 피해자는 피고인과 헤어진 후 바로 피고인에게 만나서 반가웠다며 집에 잘 들어갔는지에 관한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⑥ 피해자는 피고인이 만나서도 자신에게 욕을 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였지만, 피고인은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도 제1심법정에서, 피고인과 성관계를 할 때나 성관계를 하기 직전에 피고인이 욕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으며, 달리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욕을 하였는지에 관한 명확한 진술은 없는 것으로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와 만나서 욕을 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가 정신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피고인이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법 제6조에서 말하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나아가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피해자의 정신상태 등에 관하여 더 심리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법 제6조 소정의 항거불능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5. 강간죄에 있어 폭행․협박의 정도는?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폭행․협박으로 상대방을 겁을 주어 성기를 삽입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폭행․협박이라 함은 반드시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를 요하지 않고,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면 충분하다. 한편 마취제․수면제 등을 사용하거나 최면술을 걸어도 여기서 폭행에 해당된다.

다만 그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6도5979 판결 등 참조). 이렇듯 폭행․협박을 하여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는지 여부가 강간죄의 성부를 결정함에 중요한 쟁점인데, 실무상 당사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관련 판례를 보면서 어느 경우에 강간죄의 성립이 인정되고, 어느 경우 부인되는가를 살펴보자. ­

※ 사례별 연구
가. 강간죄가 인정된 사례
(1) 폭행 없이 오직 협박만으로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아 강간 및 강제추행죄를 인정한 사례
 
▶ 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6도5979 판결
 
[1] 가해자가 폭행을 수반함이 없이 오직 협박만을 수단으로 피해자를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에도 그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강간죄)이거나 또는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강제추행죄)이면 강간죄 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고, 협박과 간음 또는 추행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더라도 협박에 의하여 간음 또는 추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달리 볼 것은 아니다.

[2] 유부녀인 피해자에 대하여 혼인외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협박하여 피해자를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에 있어서 그 협박이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폭행의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일반적으로 혼인한 여성에 대하여 정조의 가치를 특히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형법상 간통죄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할 때 혼인외 성관계 사실의 폭로 자체가 여성의 명예손상, 가족관계의 파탄, 경제적 생활기반의 상실 등 생활상의 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간통죄로 처벌받는 신체상의 불이익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나아가 폭로의 상대방이나 범위 및 방법(예를 들면 인터넷 공개, 가족들에 대한 공개, 자녀들의 학교에 대한 공개 등)에 따라서는 그 심리적 압박의 정도가 심각할 수 있으므로, 단순히 협박의 내용만으로 그 정도를 단정할 수는 없고, 그 밖에도 협박의 경위, 가해자 및 피해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피해자와의 관계, 간음 또는 추행 당시와 그 후의 정황, 그 협박이 피해자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의 내용과 정도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강민구 변호사 이력>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미국 노스웨스턴 로스쿨 (LL.M.) 졸업
▲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1기)
▲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

[주요경력]

▲ 법무법인(유) 태평양 기업담당 변호사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 법무부장관 최우수검사상 수상 (2001년)
▲ 형사소송, 부동산소송 전문변호사 등록
▲ 부동산태인 경매전문 칼럼 변호사
▲ TV조선 강적들 고정패널
▲ SBS 생활경제 부동산법률상담
▲ 現) 법무법인(유한) 진솔 대표변호사

[저서]

▲ 부동산, 형사소송 변호사의 생활법률 Q&A (2018년, 박영사) 
▲ 형사전문변호사가 말하는 성범죄, 성매매, 성희롱 (2016년, 박영사)
▲ 부동산전문변호사가 말하는 법률필살기 핵심 부동산분쟁 (2015년 박영사)
▲ 뽕나무와 돼지똥 (아가동산 사건 수사실화 소설, 2003년 해우 출판사)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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