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3년째 머뭇하는 사이 완성차업체 역차별 "더는 못 참아"
- 기존 중고차업계 "생계 위협 토로,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역차별 불만을 토로하던 국내 완성차 업체가 내년 1월 중고차 시장 진출 강행을 선언했다. 정부 당국이 3년이 넘도록 완성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완성차 업체가 먼저 칼을 빼든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수입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허용했지만 국내 완성차는 중소업종 지정 등의 규제로 발목이 묶힌 상태였다.

이런 사이 중고차 시장은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혼탁하고 낙후됐다는 인식이 퍼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1일부터 지난해까지 중고차 중개와 매매와 관련한 불만 상담건수는 총 2만1662건으로 전체 품목 중 5위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이런 소비자들의 불만을 반영하 듯 중고차 시장의 불법을 바로 잡는 유튜버들의 활약이 주목받기도 했다. 

- 완성차 업게 "시장 진출 더는 늦출 수 없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약 260만대 규모로 추산된다.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판매한 완성차는 약 184만 대로 알려진다. 중고차판매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2019년에 만료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 대한 법적제한도 사라진 상태다. 기존 중고차 업체들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정부에 신청했지만 아직 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고차 시장을 수입차에는 허용해 역차별 논란도 불거진 상태다. 

BMW의 경우 2014년 인증 중고차 판매량이 3820대에서 2018년 1만1687대로 뛰었고, 벤츠는 같은 기간 550대에서 4640대로 늘었다. 같은 기간 아우디는 0대에서 4582대로, 재규어랜드로버는 61대에서 2677대로 증가했다. 올해는 인증 중고차 판매량이 더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더는 못 참겠다며 시장 진입에 시동을 걸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23일 제 15회 산업발전포럼에 참석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법적 제한이 없음에도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건의한 덤을 고려해 지난 3년 동안 시장 진입을 자제해왔다"면서 "그동안 중고차 매매상들과 상생협력 방안을 찾아왔지만 이견 차이로 합의점을 마련하지 못햇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겠다"면서 '소비자 요구 등을 고려해 더 이상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중고사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해외에서 연식 5년·주행거리 10만km 수준의 차량을 대상으로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간 8만대가량의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신차 판매량의 10% 수준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소비자 보호'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당위성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중고차를 공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품질을 인정받아 신차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선순환 체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일부 소비자들도 기대감을 드러낸다. 한 소비자는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네요. 예전부터 말은 나왔었는데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하나봐여. 예전보다 나은 중고차 시장을 기대해봐도 될까요"라고 했다. 

- 기존 업체 "생계 위협, 완성차 진출 막아달라" 호소

반면 기존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 진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 경쟁력이 약한 중소 업계가 큰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시민연합은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입 해제를 촉구하며 중기부를 상대로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장 국정감사에서 “현재 케이카가 한 달에 200∼250건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 회원사는 15∼16대 정도에 불과해 굉장히 힘들다”며 “여기에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까지 들어오면 우리는 매집을 못 해서 상생을 할 수가 없고 30만명(가족 포함)의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토로했다. 

한편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대기업 완성차 업체의 신규 진출과 확장 등에 제한이 걸렸다.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소비자 후생과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저믈 고려할 때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는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중고차매매산업 발전 협의회'를 발족해 수차례 간담회를 거쳤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이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상생안 도출을 위한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번번이 합의안 도출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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